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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3. 2020

수증기와 생명현상은 동일하다


매일 아침 샤워를 합니다. 잘 씻는다고 자랑질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습관이 아닌가 합니다. 습관이란 "오랫동안 되풀이하여 몸에 익은 채로 굳어진 개인적 행동"을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하게 될 정도로 익숙하다는 겁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욕실에 놓인 저울에도 올라서게 됩니다. 역시 습관입니다. 오늘 아침 저울의 디지털 숫자는 68.8kg. ^^;;;


제가 설정한 저의 체중 한계는 70kg입니다. 70kg을 넘겼던 적이 간혹 있긴 하지만 다행히 손가락으로 셀 정도입니다. 그나마 날이 추워 운동을 제대로 못하는, 한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도 한계치를 넘지 않았던 것에 위안을 삼습니다. 

지난 주말, 추위와 빙판의 위험 때문에 바깥을 뛰던 조깅을 멈춘 지 거의 6개월 만에 다시 꽃향 풍기는 공원을 10km를 뛰었습니다. 겨울 동안 동네 사우나 피트니스실에 마련된 밀 트레이드를 뛰긴 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그마저도 중단된 지가 거의 2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오늘 아침 다리 근육이 뻐근합니다. 그만큼 다리 근력이 약해져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해서 다시 회복되는 증거라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뻐근한 다리에 뜨거운 샤워로 긴장을 풀어주고 수건을 들어 머리카락을 말리며 조금은 튀어나온 똥배를 볼 겸 거울을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수증기에 덮인 거울은 시계가 제로입니다. 수건으로 거울을 닦으려고 하다가 문득 "생명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닦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욕실의 문을 열자 서서히 수증기가 가시고 거울에 비치는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제한된 공간에 더운 수증기가 기화되어 공기 중에 모여 시간이 지나자 수증기가 물방울로 형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다 압축된 공간을 풀어주자 확장된 공간 속으로 흩어져 마치 사라지듯 공간에 용해되어 버립니다. 눈에만 안보일 뿐, 그 공간에 존재하며 밀도가 낮아져 시야를 가리지 못할 뿐,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 바로 생명 현상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몸이라는 형태로 에너지를 모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욕실의 수증기는 단지 몇 분 밖에 안 되는 시간의 영속성만을 가질 뿐이지만 우리는 70~100년이라는 기간의 연속성 동안 에너지를 가두고 있는 차이일 뿐입니다. 에너지를 더 이상 보유하지 못하는 상태를 우리는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에너지의 흩어짐은 본래무일물, 원래 있던 그 자리, 바로 자연으로의 회귀입니다.


"없어진 듯 하나 항상 있고 있는 듯 하나 없는 거와 같은 현상"이 생명입니다. 인간은 이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존재이기에 생명을 뛰어넘으려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물질이 모여 형체를 만들고 그 형체가 감각과 인식을 통해 생각을 만들어내고 의미를 부여해 세상을 봅니다. "동물은 감각의 지배를 받고 인간은 의미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의미는 곧 언어입니다. 이것이 이것이다고 정의 내리고 공유하여 그 의미로 통용되어야 의미로써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 통용된 의미가 의식을 만들어내고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욕실의 수증기처럼 모였다 흩어져갈 삶의 시간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유의지로 이 세상에 오지 않았지만 발을 들여놓은 이상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작렬하는 태양빛을 느낄 수 있고 쏟아지는 빗방울의 차가움도 받아낼 수 있으며 불어오는 바람의 선선함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나의 의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깨어있음으로써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삼라만상의 생명이 함께 공존함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실 거울에 걸린 수증기의 물방울 속에서 생명 현상을 들여다보고 삶의 명징한 현장 속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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