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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9. 2020

꽃향에 대한 기억

조금 쌀쌀한 듯 하지만 청명한 하늘이 그 쌀쌀함을 상쾌함으로 바꿔주는 아침입니다. 그래서 색을 더욱 색답게 하고 있습니다. 초록은 더욱 초록이게 하고 하얗은 더욱 희게 합니다. 신체의 오감 중에서 유독 시각적 효과에 의지하는 비율이 큽니다. 그만큼 색은 강렬한 생존의 조건이었음을 반증합니다. 색이 色으로 읽히지 않고 다른 색으로 읽혀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음이어에 강렬한 생존이 걸려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에게 없어선 안될 그런 그 무엇입니다.


지천으로 널린 꽃들에 다가가 코를 들이대고 꽃이 전하는 향을 맡아본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는 그저 바라보는데 익숙합니다. 희디흰 목련꽃, 노라디 노란 개나리, 희다 못해 연분홍인 벚꽃, 흰색과 연보랏빛의 라일락 조차도

우린 그저 쳐다보고 시각적 아름다움에 취하고 맙니다. 우리 브레인에서 시각중추가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으니 당연한 것입니다만 당연한 것에 이끌려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들여다보고 다가가면 전해지는 향도 꽃을 꽃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 꽃의 향이란, 꽃이 전하는 분자의 확산이라고 과학적 답변을 내놓으면 의미가 살지 않습니다. 향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의 이미지 조합을 통해 의미를 붙여놓은 비가시적 형상입니다. 향, 냄새 하면 그 기억 속의 냄새와 일치를 시키는 놀라운 브레인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젖 냄새 같은 기억 말입니다.

 

기억의 향은 변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 기억 속에 맡았던 향기는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같은 향을 맡았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자 기억의 합리화입니다. 과거와 모양이 같았으니 향도 같을 것이다라는 합리화인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물도 현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브레인이 해석하는 데로 보이는 것이며 그 해석하는 데에도 시간적 오차범위가 존재합니다. 바로 눈앞에 보인다는 것은 태양의 광자가 사물에 비치고 그 반사되는 빛 알갱이를 나의 시각세포가 인지하여 뇌로 전달되고 그때서야 '아 저것이 저기 있었구나' 알게 됩니다. 그 깨닫는 순간이 찰나적이지만 분명 시간의 오차가 존재합니다. 내가 깨닫는 순간, 사실은 눈 앞의 사물은 바뀌어져 있을 수 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태양빛이 8분 20초 전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며 밤하늘에 반짝이던 시리우스 별빛은 4년 전에 출발한 빛입니다. 지금 당장 태양이 사라진다 해도 우리 눈에는 8분 20초 동안 태양이 존재하며 빛을 내는 것으로 인식할 겁니다. 우리가 실체적 사실을 직시한 후 인문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별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상상의 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실체가 아닌 허상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던 것이죠. 물론 '의미의 장'에 갇힌 인문학의 힘도 인간세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의 실체를 바로 보는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그저 상상일 뿐입니다. 허상보다는 실체에 다가서는 자연의 풍광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순간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꽃향기는 인문을 더하면 더욱 확실한 실체로 다가옵니다. 킁킁거리며 꽃들에 코를 들이대 볼 일입니다. 냄새 맡고 감촉을 느끼고 그리고 외양의 화사한 색깔까지도 보게 되면 비로써 꽃이라는 존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꽃향에 대해 화두를 잡았던 이유는 사무실에서 은은한 행운목 꽃향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행운목에 꽃이 필 것 같은 전조를 어제까지 보지 못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행운목 화분 3개를 일일이 다가가 살펴보았지만 꽃대가 올라오거나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코끝을 자극하는 행운목 꽃향은 뭐지? 궁금했습니다. 

그때 사무실로 여직원이 커피잔을 씻어서 들고 들어옵니다. 저보다 먼저 출근하여 사무실을 정리하셨던 것입니다. 꽃향의 정체는 여직원 분의 향수 향이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향수를 사용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행운목 꽃향에 오버랩되어 오래전 사무실 전체를 꽃향에 묻히게 했던 기억의 향으로 남아있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아니 인공적으로 조합된 향이 아니라, 화분에서 자라지만 행운목이 내뿜는 향이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놓치기 싫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기억의 향은 그만큼 강렬한 것입니다. 그대는 꽃향에 대한 어떤 기억을 품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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