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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31. 2023

관계는 섹슈얼코드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사는 일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도 세상과 관계를 맺는 첫 시작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화장실로 양치하러 가는 것도 와이프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한 관계의 행동이다.


잠이라는 침묵을 깨고 세상과 만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일은 관계로 돌아간다. 사물과의 만남도 역시 관계다. 몸에 걸치고 있는 잠옷, 양말, 넥타이 하나도 나와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그 관계 속에서 의미로 환생을 하고 가치를 갖게 된다. 


이 관계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드러내는 용어이자 자연 속의 일부로 숨어있음을 파헤쳐 연결해 주는 고리다. 인간 본연의 물성을 묻는 고전적인 질문이자 영원히 해답이 중첩되어 있을 패러독스이기도 하다. 바로 관계는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 상태를 현상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열쇠다. 


자연, 우주, 바깥세계는 물리적 시공간이다. '나'라는 self는 그 물리적 시공간 안에 있는 현상적 존재일 뿐이다. 나는 자연과 분리되어 있는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인가? 분리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하나라고 해도 말이 안 되며,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하나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 된다. 그럼 '나는 자연의 일부로 중첩되어 있다"라고 항변하면 맞을까? 소피스트의 언어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생명은 자연을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연은 생명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변형하여 숨을 수 있고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변형시킨 자연일 뿐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이고 나는 나 그대로 일뿐이다.


물리와 자연은 우연일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우연과 확률로 만나게 된다.  인간은 외부의 우연이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면 내부의 필연으로 바꾼다. 필연은 인과가 되고 관계가 된다.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관계를 불가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 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내적 동인과 외연은 상호 독립적이지만 서로 맞을 때가 있는데 그 결 맞을 때를 시절인연이라고 한다. 자연에서의 결맞음이 우연이고 확률이다. 무한대의 우연과 확률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시절인연이 속세로 내려오면 연예관계의 인연으로 재해석된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가 되면 만나게 된다는 뜻으로 읽는다. 헤어짐의 인연도 시절인연만큼만 만나고 인연도 거기까지라고 해석해, 아쉬워하거나 속상해하지 말라는 위로의 언어가 된다.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고 표현으로 관계를 정리한다.


이 시절인연의 때가 되면 자연의 이법은 열어놓은 창문을 타고 바람처럼 스스로 들어온다. 이해와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들어오는 것이다.


맹자의 공손추 하편에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 ; 하늘이 주는 때는 지리적인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인 이로움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라고 했다. 어차피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부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나의 삶을 좌우하게 된다. 시절인연을 너머 인화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나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옆 사람과의 강한 유대와 건강한 화합의 가치만이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족들에게 전화라도 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친구들에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야 한다. 관계의 유지는 나를 조금 더 드러내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옆 사람에게 관심 갖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무조건 들이댔다가는 스토커로 몰린다. 시절인연의 확률과 우연은 이처럼 중요하다. 우리는 관계적 인간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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