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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1. 2023

시간 날 때 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내서라도 해야한다

2023년도 어영부영 한 달이 지나가고 새로운 한 달 앞에 섰습니다. 23이라는 숫자가 입에 붙고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벌써 1/12을 소진한 것입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른 것은 나이 들었기 때문이다"라는 핑계를 가져다 붙여봅니다. 핑계를 대서라도 지난 한 달에, 변명의 구실로 삼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바로 작심삼일로 지나온 것들에 대한 회피입니다. 매년 해가 바뀌면 거창한 계획과 희망으로 올해의 시간표를 만듭니다. 하지만 막상 책상 앞에 붙여놓지 않았다면 한 달이 지난 지금 "내가 무슨 계획을 세웠더라?"라고 되물을 정도로 생각나지 않습니다. 혹시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것이라도 있으면 뒤적여 보기라도 해야 그제야 "그래 연초에 이런 계획을 세웠지!"라고 되새김질할 수 있습니다.


계획(計劃, plan)이란 참으로 그러합니다. 계획은 셈하듯 계산하여 새겨놓는 일입니다. 그래서 장차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나 방법, 규모 따위를 헤아려 구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3일이 지나면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천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 부여잡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면벽수도하듯 한 생각 부여잡고 앉아 있는 것조차 못하고 있음에 좌절합니다. 아니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온갖 잡생각이 치고 들어와 1분을 못 버팁니다. 


그렇게 잡념으로 뒤죽박죽 된 머릿속에서 계획의 의지가 강화될 일이 없습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잠시 눈을 붙이고 싶어 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잠시 후 옆으로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깜박깜박 졸고 있습니다. 조는 것 들킬까 봐 가끔 눈을 뜨고 헛기침도 합니다. 그러다 조느라 신체기능이 다운되며 한기가 느껴지면 무릎담요를 끄집어 가슴까지 올려 덮습니다. 그렇게 9시 뉴스와 함께 소파에서 잠이 듭니다. 엉덩이를 걷어차이고서야 화들짝 소파에서 일어납니다. "들어가 자라고 이 화상아!" 소리를 들어야 비몽사몽 안방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갑니다. 그나마 양치질이나 하면 다행일 겁니다.


해가 바뀌면 항상 계획표에 들어가는 것이 "운동"입니다. 체중 줄이기가 1차 목표이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계단 오르기, 피트니스센터 등록하기, 등산하기, 수영하기 등등 자신의 선호도에 따른 계획들을 잡아놓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들은 잘 실천되고 있습니까? 하지만 아마 운동을 못하고 있는 핑계가 하나 둘 옆구리 살처럼 붙기 시작합니다. 날이 추워서 조깅 나가기 싫고 운동기구가 집에 없어서 운동하기 싫고 그나마 아파트 계단 오르기라도 해야 할 텐데 옆집 아이 자전거가 계단에 놓여있어 방해가 되어 가기 싫어집니다. 


아니 연초인지라 업무도 바쁘고 일도 많고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가장 많을 겁니다. 핑계의 가장 그럴듯한 이유가 됩니다. 그래야 운동하지 않을 합당한 사유가 되고 그나마 운동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덜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운동과 여행은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내서 하는 것"입니다. 계획은 실천에 방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거창하고 촘촘히 짜놓은 계획일지라도 실행하지 않으며 소용이 없습니다. 계획은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편입니다. 마음을 먹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계획은 흘러가는 물에 풀어놓은 잉크 같습니다.


오늘 아침, 다이어리를 다시 뒤로 넘겨봅니다. 한 달 전 계획하고 구상했던 일들 중에 시작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것이 있는지 되짚어봅니다. 저는 나름대로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1월 한 달 피트니스센터에도 스무 번을 갔고 트레이너 개인 PT도 열 차례나 받았습니다. 덕분에 체중도 앞자리를 6자리로 내렸습니다. 가끔 하루 이틀 7자리로 회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른 계획들도 일단 계획을 넘어 기획단계로 까지는 해보고 부딪쳐보기로 다그쳐 봅니다. 계획사항 중에 이미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있긴 합니다. 계획은 했는데 생각해 보니 여러 조건이 안 맞는 상황도 변수로 등장합니다. 계획은 수정할 수 있기에 계획일 것입니다. 포기도 수정일 수 있으나 일단 기획을 해보고 초안을 준비해서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접는 게 아니고 생각의 전환으로 수정하면 가능성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조금 더 구상하고 조금 더 구체화시키다 보면 방향이 정해질 거라 생각됩니다. 일단 해보는 겁니다.


작심삼일의 계획이 있으셨던가요? 잊고 있었다면 다시 끄집어내어 책상 위에 붙여놓으시죠. 문신으로 새겨 각성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랬다가 실천하지 못하면 후회의 주홍글씨가 될 테니 거기까지는 안 하는 것이 좋겠죠. 일단 시간을 내보시지요. 소파에 옆으로 누워있다면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걷기라도 해 보시지요. 삼일후면 곧 입춘입니다. 자연의 시간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내가 게을러 시간이 빨리 흘러가게 할 뿐입니다. 박차고 나가면 자연의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나가시지요. 개천옆에 숨어있는 버들강아지 솜털의 느낌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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