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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0. 2020

글 - 감정의 그릇

글에 감정이 실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의식을 떠올려, 표현이라는 수단으로 '글'을 사용하기에 그 의식은 감정의 골짜기를 지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곧 감정이라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합니다.


1천억 개의 뉴런들이 각각 1만 개 이상의 시냅스를 하고 있는 브레인입니다. 그중 어느 하나의 뉴런에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호가 잡히면 다른 뉴런들도 이상신호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작은 파장이 큰 쓰나미를 만들어내듯이 뇌 전체를 휩싸고 돕니다. 그러면 온통 한 생각에 몰두하게 됩니다. 긍정의 파고를 높이면 기쁨과 사랑과 웃음으로 전환되고 부정과 우울의 파고로 내려가면 슬픔과 비관과 허탈이 뒤쫓아 옵니다. 수도승들은 이 한 생각을 잡기 위해 면벽 수도하고 명상을 합니다. 생각의 발현까지도 추적하는 영상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감정의 확산입니다. 1천억 개 뉴런의 움직임을 하나씩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다가오면 감정의 발현과 확산과 표현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글은 오로지 의식하고 생각하고 이를 드러내는 표현의 창작이기에 개인의 심성을 오롯이 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밖의 공기 한 점, 햇빛 한 점, 들리는 새소리 하나까지도 잡아내어 글 속으로 끌어들이는 감각조차도 말입니다. 최면을 걸어 긍정의 힘을 끌어올리고 처져있던 활력의 생기를 북돋우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낮은 곳을 보았기에 높은 곳의 원대함이 얼마나 가슴 벅찬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정상의 희열을 알기에 어두운 곳의 그늘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삶은 다양성과 다이내믹을 통해 더욱 성숙되어 익어갑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표현은 그래서 적절한 것 같습니다.


글에도 익어간다는 표현을 쓰면 적당할까요? 글에는 익어간다는 표현보다는 풍부해진다고 쓰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모든 걸 담아낼 수 있는 큰 호수와 같습니다. 태양빛에 따라 에메랄드 색에서부터 푸른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듯 말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삶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 호수에 조각배 하나를 띄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글은 설원 위의 스키 플레이트와 같습니다. 항상 에지를 잘 세우고 관리를 해야 소리 없이 눈 위를 미끄러져 갈 수 있습니다. 또한 글은 호수 위를 내달리는 보트가 끄는 수상스키와 같습니다.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경력한 동력을 지닌 보트가 끌어줘야 합니다.


에지를 세우고 수상스키를 뜨게 하는 힘은 글의 힘을 유지하는 힘과 동급입니다. 물리학 방정식의 좌변과 우변을 같게 하는 힘의 원리와 같습니다.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소재를 공급하고 재원을 모아야 합니다. 창작은 타고나는 거라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글이라는 표현의 결과물이 만들어집니다.

글은 표현의 도구이기에 쓰지 않으면 무뎌지고 감각조차 사그라듭니다. 예민하게 감각을 세우고 의식을 깨워 연필이라는 도구를 통해 적어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흩어져있는 생각과 감정을 한 곳에 모으고 추스를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담겨있는 브레인에 지식이 마르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채워 넣고 융합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채워넣지도 않고 화수분처럼 글이 전개되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욕심일 뿐입니다. 끊임없이 채워 넣고 그 안에서 정제된 언어로 하나씩 하나씩 건져 올려 글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해낼 때 비로소 생각과 감정의 결과물이 드러납니다. 그 글을 접하고 읽는 대상이 받아들이는 생각과 감정의 오버랩은 또 다른 행위이지만 말입니다.


이 아침 그대에게 새로운 생각의 원천을 전해드립니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거창한 의식까지는 아닐지라도 그저 숨 쉬고 움직이고 웃는 일상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이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행복한 순간인지를 불현듯 깨닫게 된다면 제 글의 역할은 족할 것입니다. 이 아침도 그대가 있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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