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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3. 2023

나이가 들면 돈 대신 시간을 쓰려한다

지난 6일, 서울시가 '2022년 서울시 노인실태조사'를 발표했습니다. 1957년 이전 출생자 30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서울 노인들은 노인 기준 연령을 평균 72.6세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행 노인복지법의 기준연령인 65세보다 7살이 많은 수준입니다. 또한 서울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은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텔레비전, 주변사람, 인터넷 순이었는데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1955년생~1963년생들은 절반이상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노인실태조사 자료 중에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역사회시설이 민간 병의원(93.4%), 야외공원(79.8%), 종교시설(35.7%), 경로당(16.9%), 문화시설(10.4%), 체육시설(8.4%)이라는 것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고혈압과 고지혈증, 당뇨병, 관절염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시대입니다. 자료를 들여다보면 추세가 보이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현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체 총인구 중에서 만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 사회라고 하고 14%를 넘는 경우 고령화 사회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년 후인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가 됩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손보고 정년 연장이나 폐지, 재고용까지 본격적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사회복지시스템은 없습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합의를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갖고 조금 더 지키겠다고 하면 해답이 없습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훌륭함이 판가름 납니다. 다소 미흡한 법과 제도라도 사람이 잘 운용하고 갖춰 나가면 그런대로 쓸만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문제입니다.


고령 시니어들은 돈과 시간, 사람 중에 어떤 것에 더 욕심을 낼까요? 물론 노인들에게 세 가지는 모두 다 중요하겠지만 그중에서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말입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돈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답니다. 노인에게는 사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시간이 가장 짧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제일 커서 시간이 가장 소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언제 갈지 모르는 시간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자기에게는 시간이 가장 많다고 생각하고 돈이 가장 적다고 생각한답니다.  

노인들의 이러한 인식문제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직장 은퇴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퇴시장은 돈이 안된답니다. 나이가 들면 돈대신 시간을 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이 돈을 써서라도 시간을 확보하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은퇴한 시니어들의 통장 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은퇴 후 노년생활을 30년 넘게 설계하고 계획하는 사람은 10%도 안될 겁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노년층들의 경제생활이 팍팍하다는 반증입니다. 국민연금 및 개인연금으로 노년생활을 그럭저럭이나마 유지하고 살아낼 수 있는 노인들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당연히 시간보다 돈에 대한 강박관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 쓰는 대신 시간을 쓰려고 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원천입니다. 은퇴하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게 시간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매월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없고 나가는 돈만 눈에 보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바로 노인들의 현실입니다.


생존을 걱정하는 대부분 노인층이 준비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했겠습니까? 가족부양하고 세상을 살다 보니 미래를 준비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게을러서 그렇다고, 젊어서 흥청망청 쓰며 놀았다고 단정 짓기에는 한국사회에서 버티기는 너무도 혹독했습니다. 사람 사는 어느 세상이 천국일 수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그 안에서 버텨내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생이었음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소득 인정액 기준에 따라 기초 노령연금을 매달 32만 2천 원을 지급하지만 이 금액으로는 전기세, 수도세 내면 끝입니다. 매달 들어오는 수익은 없는데 매달 빠져나가는 돈은 발생합니다. 통장의 숫자는 점점 작아집니다. 노인들의 처진 어깨가 점점 숙여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내려놓으면 그나마 버틸 수 있다"는 위안도 사실 위로로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아직 내 피부에 닿아 있지 않은 현실이기에 방심하는 나이일 수 있으나 곧 눈앞에 와 있음도 직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 번쯤 통장의 숫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써가며 정리 종합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규모에 맞게 나를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돈을 쓰기보다 시간을 쓰는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시간을 위해 돈을 과감히 쓸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음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돈 쓰는 용도가 명확해야 합니다. 남은 삶에 활력과 재창출의 기회를 계속 제공하는 용도 말입니다. 바로 노인의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활동의 불쏘시개로 돈을 쓰는 일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결을 해야 합니다. 가족과 이웃과의 연결, 놀아줄 친구와의 연결, 사회 일원으로서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브레인 시냅스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공부하는 일입니다. 연결 중에 최고의 연결은 바로 공부입니다. 이 연결의 소속감이 살아있음을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공부를 위해서는 시간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사고 강연을 듣는 등 돈을 쓰는 일이 더욱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남을 위해 돈을 쓰는 것도 미덕일 수 있으나 나이 들면 자기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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