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내 기분을 좋아지게 사람이 있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은 다음에 또 보고 싶지만 기분을 나쁘게 하는 사람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기분을 좌우하는 상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까? 아니 나는 상대방에게 기분을 좋게 하는 사람일까? 상대방 기분을 꺼림칙하게 하는 사람일까?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언행이,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고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뀐다. 딱히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애매한 것이 사람 성격이다. 애매하니까 정의 내려진 어떤 범주를 들으면 혹하고 넘어가게 된다. 혈액형으로 구분하는 성격이 그렇고 MBTI로 세분하는 성격의 범주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고 들여다보면 그런 듯 보이는 것이 범주화의 오류다.
이 범주화는 일반적으로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비슷하게 맞는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이다. tvN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걸고 노래 가사 맞추기 게임을 하는 '놀라운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출연자들이 노래가사를 받아 적는데 제각각 들은 가사를 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연자마다 다르게 들은 가사를 써놓았지만 그렇다고 하고 들으면 그런 것으로 듣게 된다. 정답의 가사를 다시 들으면 그때서야 전체 문장이 문맥으로 이어진다. 왜 한 번에 그 문장으로 듣지 못했을까?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의 인간이다. 이 확증편향은 개개인의 생활이나 학습 역량에 따라 다르다. 두개골의 두꺼운 뼈속의 암흑에 갇혀 세상을 직접 보지 못하는 브레인이 가진 한계이기 때문이다. 오감이라는 채널을 통해 외부세계를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차가 발생하고 그 오차가 회로를 돌아 행동으로 생각으로 표출될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오류의 편차를 겪게 된다. 그 편차가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확증편향으로 나타난다. 확증편향은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이것'이라는 확신이다. 고집이다.
만나면 타인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들은 이 확증편향에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의 주장이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생각한다. 상대방의 외모를 칭찬해 주고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하나까지 진정 어린 북돋움과 리액션으로 맞장구를 쳐준다. 상대방이 계속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을 해준다. 내가 너 앞에서 너의 말을 들어주는 정도의 공감이 아니고 너의 옆에 같이 앉아서 너의 시선으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진정한 공감의 자세가 충만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를 드러내기보다 상대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고 상대의 심정을 공감해 주는 것이다. 동양화를 그리는 기법 중에 홍운탁월(烘雲托月)이 있다. 구름을 퍼트려 달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우회적이고 간접적이지만 주변의 구름 모습은 오히려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여 달을 더 돋보이게 한다. 달을 그리지 않아도 거기에 밝은 달이 있음을 알게 한다. 기막힌 방법이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상대의 장점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나 또한 그 후광을 입게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닫힌 지갑도 열게 하는 마법의 요술램프다. 칭찬, 기분은 모두 감정과 관련된 렉시콘들이다. 기분과 감정을 좋게 하는 단어들을 문맥에 맞게 잘 구사하는 사람이 타인을 돋보이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전문가다. 그렇다고 칭찬의 말을 남발하는 것도 금방 눈치챈다. 진정성이 있는 칭찬인지 아부의 멘트인지 말이다. 칭찬이 감정의 렉시콘이기 때문에 그렇다.
밸런타인데이라고 사무실 입구에 초콜릿이 쌓여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초콜릿 회사의 마케팅 상술임을 알면서도 초콜릿 하나에 감정의 마음이 달달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인간이란 그런 놈이다. 그렇게 간사하고 그렇게 나약하다. 꼬시면 넘어간다. 사탕 한 봉지 주머니 넣고 밸런타인데이를 핑계 삼아 옆 사람에게 넌지시 건네보자. 사람은 그렇게 정분을 쌓고 사랑을 시작하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