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어떤 접속사(conjunction)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지 이번주 나흘 치의 아침글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4번, '하지만' 2번, '그런데' '그랬더니' '그나마' '그러기 위해서는'을 각각 1번씩 썼다. 나흘 간의 글 중에서 이틀의 글에는 접속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쓰기도 했다.
글에서 접속사는 앞 문장의 내용을 받아 다른 문장으로 주제를 계속 이어가고자 할 때 사용하는데 '그러나'처럼 앞 문장과 전혀 다른 내용의 반론을 전개하고자 할 때 쓰거나 '그리고'처럼 앞의 주제와 같은 내용으로 계속 뒷 문장을 이어가겠다는 의도가 많이 쓰인다. 문장보다는 문단을 전환하거나 이어갈 때 주로 사용한다.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고 매끄럽게 글이 흐를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윤문의 생명이긴 하겠지만 접속사를 적절히 사용하면 글이 파도를 타듯이 주제를 끌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침글을 쓸 때 주로 사용한 접속사들을 보면 앞의 문단 내용을 이어가는 순접 접속사와 앞 문단에서 제시한 내용과 반대되는 사례를 들어 전체글을 강조하고 싶을 때 쓰는 역접 접속사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내가 사용하는 접속사의 기능은 글의 길이를 늘이려는 목적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사실 접속사가 글이 아닌 대화로 들어오면 추임새가 되고 감정을 이어주는 연결사가 되기도 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끊는 단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글은 쓰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적절하게 접속사를 언제 어떻게 쓸 것인가가 정해진다. 글은 일단 쓰는 사람의 손을 떠나면 읽는 사람의 것이 되지만 쓴 사람의 손을 떠나기 전에는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 걸러지고 순화되는 과정과 시간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글 속에서의 접속사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화 중에 등장하는 접속사는 감정을 연결하는 도화선이 된다. 대화는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대화라 하지 않는다. 독백이라고 하고 때와 장소가 맞지 않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상대방이 있는 대화가 서로 잘 되려면 말하기보다 듣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의 "대화는 말하는 사람의 수사학이 아니고 듣는 사람의 심리학이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그렇다면 나의 주장을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대화의 생명이다. 이때 접속사 '그리고' '그래서'는 엄청난 기능을 한다. 상대방이 말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며 '내가 지금 당신의 말에 관심을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어'가 된다. 상대가 어떤 주제로 말을 하는데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데?"라고 물으면 궁금하다는 관심과 공감의 표시로 읽혀 계속 말을 하고 싶게 만든다. 계속 말을 하게 하면 말하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 대화의 핵심이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줘라.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 신바람 나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접속사를 많이 사용하면 된다.
반대로 대화 중에 '그러나' '그런데'와 같은 화제 전환용 접속사는 상대방의 말을 끊고 기분 나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창 떠들고 있는데 "그런데 말이죠. ~~"라고 치고 들어가면 벌써 자기 의견과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을 눈치채 버린다. 뒷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접속사 하나만 들어도 벌써 문장을 예측해 버린다. 브레인은 단어사전으로 구성된 렉시콘으로 생각을 연결하는데 부정적 접속사는 반드시 뒤에 따라오는 문장도 부정적일 거라 추론을 해버리는 것이다. 부정적인 문장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반대하는 것이 된다. 기분도 상하게 하고 감정도 격앙시킨다. "뭐 저런 놈이 있어. 내 이야기에 관심 없다는 거야 뭐야"로 가버린다.
대화나 감정은 기술이다. 기술은 조절할 수 있다. 이 기술 중에 하나가 바로 접속사를 잘 쓰는 일이다. 접속사를 잘 쓰면 글이 편해지고 대화가 순조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