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Feb 28. 2023

돈 없음이 가난의 전부가 아니다

가난, 빈곤, 궁핍, 결핍, 부족함, 모자람, 찌질함 ㅠㅠ


"부족하거나 적어서 넉넉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뜻하는 용어들이다. 이 부족함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불평등에서 찾기도 하고 개인적 특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그런 논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오늘은 그저 물질이 되었든 지식이 되었든 많이 소유하지 못함에 대한 경계까지만 다가가보자.


현상에 감정이 섞이게 되면 중구난방이 되어버린다. 각자 생각하고 경험한 것이 모두 다르기에 감정이 개입되면 같은 현상도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혼선을 가져온다. 심지어 감정이 섞인 단어의 사용과 문맥의 흐름을 놓고 언쟁이 벌어지고 급기야 싸움이 되기도 한다. 부족함에 대한 단어와 용어가 세분화되어 있고 많다는 것은 그만큼 미세하게 현상을 봐야 한다는 반증이다. 언쟁을 피하기 위한 대비책이며 조심스러움이다. 단어와 용어가 곧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족함은 실체가 있는 물리가 아니라 현상성이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어적 현상성을 실체로 투영해 가장 절실하게 설정해 놓은 것이 바로 '돈'이다. 지금 지갑에 5만 원과 1만 원짜리 지폐가 있고 통장의 숫자가 눈에 보인다. 주식 전광판의 숫자조차 돈의 실체가 실시간을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상성이 실체를 가지게 되면서 집착으로 변한다. 소유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힘을 발휘하는 무기가 됨을 직감한다.


그래서 돈이 얼마나 많고 적으냐에 따라 부족함의 천칭 기울기를 따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부족하지 않을까? 알다시피 적당한 기준이 없다. 인간의 수만큼이나 많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기에 부족함의 중앙값에 대한 분포를 따질 수 조차 없다. 중앙값을 알아봐야 소용이 없다. 각자 다른 기준점을 가지고 있고, 부족함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부족함, 가난의 단어를 진화론적으로 접근하면 피식자 동물의 근원으로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피식자의 한 종에 불과했다. 피해 다니고 숨어 다닐 수밖에 없던 동물이다.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꼼짝 못 하고 얼어붙는 현상이 아직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회피하고 도망가는 현상이 바로 DNA에 내재되어 있다. 이런 생존본능의 근간을 잘 활용했기에 오늘날까지 번성한 동물 종이 되었다. 이는 인간이 포식자가 아니었고 피식자였기에 사회를 구성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를 통해 언어를 만들어 상징을 씀으로써 지구표층의 최상위자로 군림하게 됐다.


부족함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족함과 한계가 욕망을 자극하는 트리거가 되기도 한다. 원고 마감시간은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쥐어짜는 동기가 되며 전철이 플랫폼에 들어오는 시그널은 탑승하고자 하는 사람을 뛰기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맞춰 놓는 것도 시간의 한계를 설정해 놓고 움직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든 부족하면 모든 언행도 부정적으로 된다. 바로, 줄이고 멈추어야 생존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봐야 소용없어"를 입에 달고 산다. 모든 것에 핑계를 달고 하지 않을 이유를 댄다. 가난하고 부족하면 가장 빨리 만날 수밖에 없는 단어가 바로 소극적, 부정적,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식의 세계로 들어와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르고 어려우면 바로 회피한다. 어려운 게 아니고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생소해서, 해보지 않아서 어렵다고 느낄 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새로운 지식과 마주하기를 꺼려한다. 지식을 확장하지 않으면 다양한 시선으로 삶을 관조할 수 없다. 많이 깊이 알수록 세상을 보는 시선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귀찮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내게 된다. 빈둥빈둥 살다 보면 외골수가 빠지게 되고 자기주장만 하는 전형적인 꼰대가 된다. 꼬릿꼬릿한 냄새나는 중년으로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식의 향기로 자기의 아우라를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부족함을 가난이라 한탄할 것이 아니고 더 저장하고 더 쌓을 수 있는 곳간의 여유로 생각하면 힘을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너무 찌들어 살지 말자. 용기 내어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돈은 적당하면 되면 지식은 많으면 좋다. 경계가 참 애매하지만 주눅 들지 않을 만큼의 경계는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경계를 굳건히 지키는 파수꾼은 자기 자신이다.

작가의 이전글 젊을수록 운동을 더 많이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