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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7. 2023

약자의 르상티망을 뛰어넘자

약자들의 시기와 질투, 원한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합리화하는 방식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한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심리가 르상티망의 전형이다. 높은 가지에 달려있는 포도가 먹고 싶어 아무리 뛰어봤자 닿지 않자, 못 먹고 돌아가며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는 자기 위안의 말과 행동이다.


곧 시즌2가 방영된다는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도 학교폭력의 악을 다루면서 시청자들의 샤덴프로이데(schaden freude ;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자극하고,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인 영화 '존 윅(john wick)'을 보는 것과 같은 복수의 르상티망이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화나 드라마를 들먹이며 르상티망의 사례를 우회할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르상티망이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게 나라가 짓밟히고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당할지언정 명나라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않았던 조선의 나약한 명분도 르상티망의 발로였다. 비록 군사력이 약해서 졌지만 일자 무식하고 야만적인 오랑캐보다 조선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명나라 성리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소중화(小中華)의 나라임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르상티망의 조선사적 단어가 위정척사(衛正斥邪 ; 바른 것을 지키고 그릇된 것을 물리친다)인 듯하다. 구한말 세계열강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고 배척을 하다 나라가 망했다. 찌질한 르상티망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군국주의에 눈먼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착한 민족이라는 코스프레를 달고 있다. 일본 놈들 때문에 징용을 끌려갔고 수많은 동포들이 전쟁에서 죽었고 고통받았음을 강조한다. 침략과 식민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키우지 못해 당해놓고 힘센 놈을 비난하는 전형적인 르상티망의 시선을 못 벗어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젠 식민지시대의 그림자를 걷어낼 만도 한데 아직도 그 어둠에 스스로 들어가 명분을 따지고 있다. 물론 명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을 만큼 힘을 키우지 않았나? 군사력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 문화 등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세계무대에서 일본과 맞붙어도 전혀 꿇리지 않을 정도는 되지 않았나? 이쯤 되면 반성하고 사죄하기가 먼저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그래 짜식들 우리가 용서해주께. 다시는 그러지 마라"라고 할 정도의 배포를 부려도 되지 않을까? 

물론 고통받고 상처받은 많은 생존자들이 계시고 그분들의 심정이야 일본 놈들을 갈아 마셔도 시원찮고 일본열도를 폭파시켜 태평양에 수장시켜야 속 시원하게 정리가 완벽하게 될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옆집에 살고 있는 놈을 어쩌겠는가? 미우나 고우나 옆집과 나란히 대문을 열어야 하는 게 작금의 세상살이다. 지금은 뒷집이 더 문제다. 어떻게든 옆집과 대문을 열고 골목길을 공유해야 뒷집문제 해결에 전념할 수 있다. 세상 살면서 지고 이기는 전술은 개인에게 있어서나 국가적 외교에 있어서나 꼭 필요한 것일 텐데 쉽지 않다.


이처럼 한민족의 뿌리 깊은 르상티망은 아직도 작동해서 분노 표출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악의적 댓글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적 비난이 난무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조롱과 비난은 가장 쉬운 르상티망의 표현 방편이다. 그냥 지르고 보는 것이다. 내뱉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야 상처를 받든 죽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정치판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들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틀림없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쪽도 못쓰고 빌빌거리거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내뱉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왜 그럴까? 그 안의 물이 그렇기 때문이다. 개개인별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임에도 그 물안에 빠지고 나면 진흙탕에 발이 빠진 형국이 되어 버린다. 발만 빠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뒹굴러야 한다. 몇 달 지나면 그놈이 그놈이다. 구분이 안된다. 이렇게 국회의원들을 폄하할 수 있는 이유도 내가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르상티망이다. 국회의원들에게 미안하다. 본인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텐데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들을 대신하여 욕을 먹고 있다고 위안이라도 삼기를 바란다.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정치권에 계신 모든 분들 정말 고생이 많다. 그래도 한국 사회가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온 국민이 잘 알고 있다. 


세상은 제 자리에 있기만 해도 잘하는 것이지만 제 자리에만 있으면 뒤로 가는 것과 똑같다. 난 놈들은 앞으로 뛰기 때문이다. 르상티망을 넘어 이제 우리는 진정한 자부심으로 세상에 나서도 되는 때가 되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찌질하게 위축되어 몸 사리지 말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쪼잔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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