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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4. 2023

'숨구멍'과 '숨골'은 생명의 창문

어제 아침글 키워드가 '숨구멍'이었는데 저녁에 퇴근하여 KBS 9시 뉴스를 보는데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과 관련된 리포트 중에 '숨골'이 나온다. 눈이 번쩍, 귀가 쫑긋 했다. 뉴스 리포트는 제주 제2공항을 건설하는데 환경부가 이미 사업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놓고 조건부 동의를 했다는 내용이지만 보도 줄거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숨골'만 보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확증편향의 단편을 보게 된다.


'숨골'은 제주도와 같은 화산지형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빗물이 지하의 용암동굴로 빠져나가는 통로'다. 제주지역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제2공항 건설 예정지에도 150개가 넘은 '숨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 하천이 없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바로 스며들어 지하로 유입되고 현무암 틈새를 지나면서 정수가 되어 지하수를 형성한다. 제주도 물맛이 세계적인 이유다.

그런데 장마철과 같이 비가 폭우로 내리면 하천이 없는 제주는 물난리를 겪어야 할 테지만 바로 이 '숨골'이 있는 관계로 빗물이 모여 지하로 내려가기 때문에 큰 피해는 거의 없다. '숨골'은 제주 지하수의 비밀통로이자 천연 배수구였던 것이다.


제주에는 비 올 때만 폭포가 되는 '엉또폭포'가 있다. 제주도의 3대 폭포인 천제연, 정방, 천지연폭포가 모두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엉또폭포'는 서귀포 중산간 지역에 있다. 그래서 한라산에 70mm의 집중호우가 내려야 엉또폭포에 물이 쏟아져 내리게 되는데 비가 안 올 때 '엉또폭포'는 그냥 바위 절벽이다. 엉또폭포에 물이 쏟아져 내리는 장관은 한여름 장마철 제주여행의 심란함을 씻어낼 백미가 아닐 수 없다. 때를 맞춰 가야만 진경을 볼 수 있는 특별한 폭포다.


'숨구멍'과 '숨골'은 말 그대로 구멍이다. 그런데 어디에 나 있느냐, 주체가 누구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개념으로 다가온다.


북극해 꽁꽁 언 바다의 숨구멍의 주체는 바다에 사는 해양 포유류들이다. 허파호흡을 해야 하는 숙명으로 얼음구멍을 만들어낸다. 북극바다 숨구멍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얼음들이 크레바스처럼 갈라져 나타날 수 있지만 그 구멍이 얼지 않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나 바다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그래야 숨구멍이 닫히지 않는다.

반면 '숨골'은 지표에 흐르는 물을 모아서 지하로 내려보내는 통로의 입구다. 동굴의 형태일 수 도 있지만 물만 빠져내려 갈 수 있는 '숨골'이 더 많다.  지하로 연결되다 보니 '숨골'은 온도가 13-17도 정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된다. 물만 빠져나가는 통로를 넘어 말 그대로 땅이 숨을 쉬는 '숨의 통로'다.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포근한 바람이 숨골로부터 나온다. 폭우가 내릴 때는 물의 통로이지만 평상시에는 숨의 통로다.


'숨구멍'과 '숨골'은 막히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생명과 좌우되기 때문이다. '숨구멍'이 막히면 북극의 해양포유류는 다른 숨구멍을 찾아내야 한다. '숨구멍'은 생명이다. 역시 '숨골'도 땅의 생명선이다. 제주도에서 '숨골'을 지하수 보전 1등급으로 보호하는 이유다. '숨골'이 막히면 갈 길 잃은 물은 사방천지를 휩쓸어 갈 수 있다. 자연의 통로 하나하나에도 이렇게 생명이 유지되고 보존되고 관리되는 순환의 고리가 작동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닫을 수 없다. 닫는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숨구멍'과 '숨골'을 인문으로 끌고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마음과 생각과 의식의 '숨구멍'을 내고 스트레스를 내보낼 '숨골'도 만들어야 한다. 구멍 난 가슴이 있다면 폭우를 내려보낼 '숨골'로 만들 일이다.



ps : 유채꽃있는 '숨골'사진은 3월 13일자 경향신문 현장화보에 나온 것을 트리밍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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