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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6. 2023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제 오후 40년 지기 친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독촉문자입니다. 그저께 오후에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통화에 대한 확인 독촉입니다.


구구절절한 문자의 결론은 25만 원을 내일까지 꼭 입금해 달라는 겁니다. "이런 부탁 다시는 없을 거야"라는 다짐도 있습니다.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나이 60세 가까이 되는 현실에서 아직도 이런 문자를 받는다는 것이 한심할뿐더러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측은함도 들고, 이렇게 돈 빌려달고 하는 행위에 화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어제 오후엔 가까운 지인의 부친상이라 같이 아는 2명이 함께 다녀왔는데, 돈 보내달라는 문자를 차 안에서 받았습니다. 도로도 막히는 관계로 이 돈 빌려달라는 문자를 대화의 소재로 꺼냈더니 다들 한 마디씩 본인들의 사례를 털어놓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돈 보내주지 말라는 겁니다. 돈 보내줘 봐야 잠시 뿐이고 또 요구한다는 겁니다.


저도 압니다. 그 친구한테 보내줬던 돈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빌려간 놈은 얼마를 빌려갔는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빌려준 놈은 10원 단위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돈 빌려달라는 놈은 애매한 단위의 금액을 요구합니다.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계좌번호를 찍어 금액을 입력할 정도의 금액입니다. 제가 그 친구로부터 빌려달라고 받았던 숫자는 3만 원에서부터 50만 원 범위 내의 금액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의 액수입니다. 그 액수가 당사자가 그 당시 꼭 필요한 금액일 수 도 있고 여러 명에게 여러 번 삥 뜯기 위한 전술일 수 도 있습니다. 그렇게 포기하듯 입금해 준 사례가 손가락을 다시 한번 되돌아 꼽아야 할 정도는 됩니다. 제가 물러 터져서 그런 것이라 자책하게 됩니다.


사실 올해 1월, 설 명절 전에도 그 친구에게, 가까운 5명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십시일반 모으니 100만 원대가 넘었습니다. 그 돈을 보내줘 봐야 얼마 못 갈 것도 짐작했습니다. 그래도 보내주자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업보라고 생각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업보는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2달도 못되어 다시 돈을 빌려달라는 문자를 받은 것입니다.


저 말고 그 친구를 아는 다른 친구들도 이야기는 안 했지만 저와 똑같이 가끔 문자가 오면 돈을 보내주곤 했던 것입니다. 참 좋은 친구들 속에 블랙스완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던 겁니다.

얼마 안 되는 돈 그냥 보내주고 퉁치고 싶은 게 제 심정입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질 듯해서입니다. "이번에는 못 보내주겠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으로 '못 보내겠다. 미안하다'라는 문자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저께 전화가 왔을 때도 "알았다"라고 하고 끊었습니다.


밑 빠진 독임도 압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 빌려줘봐야 아니 줘봐야, 가끔 바가지로 물을 부어 넣는 형국일 뿐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그 질긴 인연의 고리가 마음의 갈등을 헤집어 놓습니다.


단호하게 끊는 것이 더 옳은 일일 수도, 맞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 친구의 행태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그 친구를 도와주는 일일까요? 돈을 보내주는 것이 오히려 그 친구를 계속 망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도 폰뱅킹을 열어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보내면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잘 견뎌내야 할 텐데, 어머님도 건강하셔야 할 테고, 봄볕이 저렇게 따스하게 내리비치는데 어머니 손잡고 꽃구경이라도 가야 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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