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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5. 2023

목적지 없는 여행

동물들은 목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숨 쉬는 것조차 살기 위해 쉬는 목적이 있고 아침마다 샤워를 하고 출근하는 것도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기본 목적이 있다. 존재의 대상으로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 다가오는 필연의 과정이다. 한치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다 어쩌다 가끔 목적 없이 의미를 놓고 싶은 때가 있다. 사실은 그마저도 목적을 갖게 되는 거지만 겉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 포장을 하고 본다. 그냥 하는 거라고, 그냥 가는 거라고, 그냥 먹는 거라고 말이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그중 하나다. 예약이고 뭐고 없다. 옷가지 챙기고 캐리어 끌고 갈 엄두조차 필요 없이 그저 선글라스와 선블록크림, 신용카드 한 장 든 지갑과 같은 서바이벌 아이템이 든 백팩만을 둘러 매고 나선다. 백팩에 유효기간 남아 있는 여권이라도 들어있으면 공항으로 가는 전철을 탄다. 공항 벽을 따라 흐르는 항공편 출발시간들을 주르르 내려보고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도시 하나를 그냥 찍고 카운터로 가서 빈 좌석이 있는지 묻는다. 그렇게 덜렁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꼭 그 도시에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빈자리가 있다고 하니 일단 타고 본다. 도피일까?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그냥 떠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낯선 도시에 홀로 터벅터벅 걷는 자신을 발견한다. 휴대폰을 열어 오늘 하루 잘만한 게스트 하우스를 살펴보고 우버를 불러 맛집을 찾아간다. 나를 알아볼 사람 하나도 없다.


자유인 듯한데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온다. 불안감도 겹쳐온다. 호기로 무작정 떠나 오긴 했는데 이제부터는 걱정이 슬슬 몰려온다. 날도 어두워지는데 도시의 치안은 괜찮은지 두리번거린다. 나와바리가 주는 편안함이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었다면, 낯선 도시에서의 불안함은 예측불가능한 시간에 대한 막연함에서 온다.

목적 없는 막연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짭밥이 필요하다.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 막연함이지만 그래도 그 막연함에 노하우가 필요하다.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여행자가 많은 도시일수록 금방 친해진다. 의기투합해 같이 트레킹 할 친구들이 생기고 헤어질 때쯤 SNS를 서로 알려주고 이메일도 주고받는다. 막연함이 확실한 정보루트로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잡고 익숙함으로 바뀌어 간다.


그렇게 망상 속에 홀로 여행을 떠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삶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있는 곳이기에 잠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그것을 자유라 한다. 자유와 여행은 "시간 날 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라도 누려야"한다. 그래야 막연함이 주는 불안감이 설렘으로 바뀐다. 가보지 않았고 해보지 않았던 일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불안과 설렘의 종이 한 장 차이 간격을 어떻게 뒤집을 것인지는 내 결단에 달렸다.


이런 막연함의 우연적 효과를 잘 이용했던 화가들도 있다. 마네와 모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있었고 그들보다 앞섰던 벨라스케스가 있다. 바로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으로 캔버스 위에 즉흥적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가까이서 보면 사물의 대상이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뭉개져 보이지만 뒤로 물러나서 그림을 보면 작품 속 대상이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이는 절묘한 수법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림을 보면 그림 속 꽃이 살랑이고 인물들이 말을 건다. 유명 화가들은 이미 막연함을 뚜렷함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던 듯하다. 2차원 평면의 그림 속에서 구현해 내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내려놓으라고 한다. 목적 없는 행위란 있을 수 없기에, 내려놓는다는 것은 가만히 관조해 보라는 뜻이다. 어차피 다시 목적을 향해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잠시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있어 보면 그제야 목적이 다시 보인다. 결국 내려놓는 행위는 목적을 재정의하는 시간이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일조차 자기의 일을 다시 보고자 하는 목적의 발로다. 갔다가 돌아오기에 여행이다.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방랑이고 방황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 돌아올 곳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다. 가슴 쓸어내리며 편안함에 다시 젖어본다. 이곳에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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