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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4. 2023

옷 잘 입는 남자가 드문 이유

왜, 옷을 예쁘게 입는 여성들은 많은데 옷을 멋지게 입는 남성들은 드문 것일까?


패션 감각에도 남녀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가끔 옷 핏이 살아있는 남자들도 있는 것을 보면 성별의 차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 차이일 가능성이 더 큰 듯하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간 남자의 이동 동선만 살펴봐도 왜 남자들의 패션감각이 부족한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남자들은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갈 때 미리 어떤 옷을 살 건지를 머릿속으로 정한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기온에 맞는 옷을 사러 간다는 당위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옷장 안에 당장 입을 옷이 몇 개라도 걸려있으면 옷을 살 생각조차 안 한다. (나만 그런가? ㅠㅠ)


대강 어떤 옷을 살 것인지 결정하고 백화점에 들어가면 오직 남자 옷을 파는 층을 확인하고 곧장 해당 층으로 직진한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면서 전체적으로 매장을 눈으로 스캔을 한다. 크게 두리번거리지는 않는다. 두리번거리면 창피한 줄 안다. 곁눈질로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신상들을 재빨리 살핀다. 그리고는 그중에 그래도 마음에 드는 칼라와 옷의 핏이 보이면 그 매장으로 바로 들어간다. 특히나 정장 양복을 사러 갔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가 평소에 입던 브랜드의 매장으로 바로 직진한다. 직원의 안내로 피팅룸에서 체형에 맞는 크기의 옷을 한 두벌 입어 보고는 바로 사기로 결정한다. 옆에 있는 다른 브랜드의 매장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골랐던 옷의 가격이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아니면 그냥 첫 매장에서 옷이 결정된다. 그러고 나서는 바로 결제를 하고 쇼핑백에 옷을 담아 유유히 백화점을 빠져나간다.


여자들의 쇼핑 스타일은 남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적어도 대여섯 군데 매장을 들러 집집마다 입어보고 다시 옆 매장에 들러 살펴보고 온다고 하고는 또 다른 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남자들이 와이프와 쇼핑을 잘 안 하려고 하는 이유다. 남자들이 백화점에 머무는 시간은 최대 30분을 넘는 경우는 드물지만 여자들은 기본 2시간은 돌아다녀야 하는 듯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여자들은 그렇게 한 층에 있는 옷가게 대부분 매장을 돌아다니며 입어보고 가격 비교를 한 다음에 그중에서 최종 선택한 가게로 다시 돌아가서 옷을 산다. 온갖 할인 쿠폰을 들이밀고 해당 브랜드에서 할인이 되는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계산을 한다. 

여자들이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여 옷을 고르고 골랐으니 당연히 가장 어울리는 옷을 선택했을 것은 자명하다. 그나마 옷만 사면 다행이다. 가방매장에도 들러봐야지, 화장품숍에 가서 샘플도 발라봐야지, 유명 브랜드에서는 신상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었나 궁금하니 또 돌아봐야지, 반나절의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옷을 고를 때 여자들은 지금 집 옷장에 있는 계절 옷과 구두, 장신구 등과 매칭이 되는지까지 염두에 두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냥 딱 봐서 "어 괜찮은데" 정도면 한번 입어보고 바로 사버린다. 다른 옷과의 코디는 거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남자들은 사실 집 옷장에 어떤 옷이 걸려있는지조차 거의 관심이 없다. 옷에 신경 쓰는 것은 기생오라비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옷을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입어보면 "어? 백화점에서 입어 봤을 때 하고는 다른데!"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바꾸러 가거나 환불하지도 못한다. 자기가 결정했으니 그냥 입기로 한다. 남자들의 옷 핏에 언발란스가 나오는 이유다. 겉옷 따로, 셔츠 따로, 신발 따로 논다. "어떻게 저렇게 입고 다니지?"정도의 핀잔을 들어도 그렇거니 하고 다닌다.


사실 남자들이 옷빨로 멋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웬만큼 체형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옷을 잘 입으려고 해도 핏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사회생활하면서 자기 몸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하니 점점 똥배 나오고 허리는 굵어진다. 옷 핏을 살릴 수가 없는 원죄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도 옷 핏을 잘 살려 입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관계의 미학에서 기본이다. 자기의 첫인상을 옷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비즈니스 관계로 처음 대면하는 사람이 많은 직업일수록 그렇다. 옷 입은 것만 봐도 직업이 뭔지 대충 알아챌 수 있고 그 사람 성격이 어떤지 눈치챌 수 있다. 옷은 자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표시이자 바로미터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남자들의 패션에도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가 필요하다. 남자들의 옷차림에도 무심한 듯 하지만 세심하고 유유자적하면서도 능란하게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장된 무심함'이다. 정장 양복 윗주머니에 손수건 하나 꽂는 것, 발목이 살짝 보이는 바짓단 밑으로 구두와 매칭된 양말이 보였다 사라지는 그런 포인트다. 호수 위의 백조가 우아하고 고고해 보이는 것은 물밑에서 발길질을 수없이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멋있어 보이는 남자의 핏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부단한 운동으로 단단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남자 패션의 완성은 향수로 마무리하듯이,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아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스프레차투라는 아우라처럼 배어 나와야 한다. 가장한 무심함이 촌스러움처럼 드러나면 스프레차투라가 아니다. 꼰대가 될수록 옷 입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옷도 추레한데 꼰대 냄새까지 난다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스프레차투라로 위장을 하고 향수로 가리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자 타인을 위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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