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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7. 2023

패션의 완성은 향수다

출근 준비의 마지막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것이겠지만 옷을 갖춰 입고 드레스룸을 나서는 순간의 마지막은 향수를 뿌리는 일이다. 그래서 패션의 완성은 향수라 할 수 있다.


패션과 향수(香水 ; perfume)는 연결점이 전혀 없는 듯 하지만 옷차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마법의 향이자 자신을 정의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패션은 시각적 자기표현이고 향(scent)은 후각적 자기표현이다. 존재를 드러내는데 가장 직접적인 요소다. 둘 중에 하나만 소홀히 해도 존재의 가치를 반감시킨다. 무시하고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향수와 여자는 떼어놓으래야 떼어놓을 수가 없지만 향수와 남자의 관계는 일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지금이야 남자들, 특히 자기 관리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들은 향수를 필수적으로 사용하지만 적어도 꼰대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하는 50대 이상의 남자들에게는 필수품이 아니었다. 그 시대의 남자들에게는 세수할 때 비누향이 최고의 향수였거나 그나마 로션이라도 바르면 그것으로 향수를 대신했으며 그나마 면도를 하고 나서 피부를 진정시키는 애프터쉐이브로션 정도가 그 남자의 향을 규정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향수와 친해져야 한다. 소위 꼰대 냄새이자 홀아비 냄새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호르몬 변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자주 씻고 자주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간시간 동안을 향수로 일부 가리는 위장을 하는 것이다. 향수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인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다.


사실 자기의 냄새는 자신만 모른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과 스치고 자나기만 해도 체취와 여러 향들이 혼합된 냄새를 통해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한다.

나는 오늘 아침, 블루 드 샤넬 오드 퍼퓸을 뿌리고 출근했다. 향수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사는 듯하다. 사용 중인 향수가 1/3 정도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다른 향수를 산다. 주로 해외나 제주 갈 때 면세점에서 산다. 나를 위한 거의 유일한 면세점 구매 아이템 중 하나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면세점에 들러 향수를 사려고 할 때 마스크를 쓰고 있고 벗을 수 도 없어 조향을 하지 못하고 향수를 사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향을 위해 향수를 사는데 어떤 향인지 알지도 못하는 향수를 사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예전에 사용해 봤던 향수를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샤넬 블로도 작년에 제주 면세점에서 산 것이다.


나는 따로 선호하는 향이 있거나 메이커가 있지는 않다. 그동안은 주로 불가리나 아르마니, 조말론, 랄프로렌, 겐조, 샤넬, 에르메스, 보스 정도의 브랜드를 썼다. 이들 브랜드 중 신상품이 있거나 하면 선택하는 쪽이었고 향은 계절별로 여름시즌 때면 프레쉬한 향을 고르고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달콤한 향을 고르는 정도다. 정통 퍼퓸보다는 오드 퍼퓸을 쓴다. 오드뜨왈렛이나 오드콜로뉴는 부향률이 낮아 향의 휘발성이 빨라서 선호하지는 않는다.


70-80년대만 해도 씹는 껌에 배합된 향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아카시아 향기의 롯데 껌과 스피아민트, 쥬시후레시는 폭발적인 인기였다. 물론 향보다는 광고노래와 푸릇한 모델들의 이미지가 더 강했기 때문 일 수 도 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세탁할 때 쓰는 섬유유연제에 들어간 향이 익숙하다. 간혹 아로마 향초나 캔들을 선물 받기도 하는데 향이 너무 강해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자동차 방향제도 우리에게 익숙한 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 이미 향이라는 수단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꼭 고급스러운 향이 아니더라도 향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포장과 위장의 수단일지라도 그것이 마케팅으로 활용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백화점 1층에 유명 브랜드 화장품 숍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고전적 마케팅 기법이다.


그만큼 향은 직접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좋은 향 = 좋은 것, 나쁜 향 = 나쁜 것, 상한 것이라는 등식을 갖는다. 향수를 써서라도 좋은 향을 풍겨야 할 이유다.


사실 상큼한 향수의 향은 기분조차도 상큼하게 한다. 봄바람에 실려오는 라일락 향기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스치는 사람에게서 내 사람의 향기를 떠올리게 하여 뒤돌아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서 향수는 강렬함보다 은은함이 생명인 듯하다. 강렬함은 피하게 하지만 은은함은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특히 남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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