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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0. 2023

종이신문을 뒤쪽에서 앞으로 읽는 이유

출근하면 사무실 입구에 종이신문들이 매일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당직자들이 매체별로 하나씩 정리해 놓은 것만 해도 20개 정도는 되고 그 한편에 여러 부씩 온 것을 모아 놓은 높이가 거의 1미터 정도는 됩니다. 언론사와의 소통이 주 업무인 커뮤니케이션실이니 당연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종이신문을 들고 가서 읽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는 모순에 빠집니다. 간혹 꼰대 축에 속하는 팀장 정도만이 하나씩 들고 갈 뿐입니다. 직원들이 게을러서 그럴까요? 아니면 종이신문의 기사 가치가 바닥이어서 직원들의 관심을 못 받아서 그럴까요?


요즘 젊은 직원들은 종이를 안 넘기고 온라인 기사 스크랩 프로그램으로 신문을 읽습니다. 업무 관련한 기사들은 매일 아침 당직자들이 검색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메일로 보내줍니다. 손가락에 침 발라가며 종이를 넘기지 않아도, 컴퓨터 화면으로 종이신문 형태의 기사 검색을 하고 정보를 취득하고 스크랩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무실 한쪽 벽면에 종이신문을 매체별로 분류하여 보관하는 함도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쌓이는 신문종이를 감당할 수 없어 매일매일 청소미화원께서 처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매일 버린다는 겁니다.


아! 간혹 집에서 종이신문이 필요하다고 퇴근길에 묶어서 가져가는 직원이 있기도 합니다. 집에 애완견을 키우는 직원입니다. 애완견들이 집에서 용변을 보는 장소에 깔아 두는 용도로 필요하답니다.


종이 신문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제가 평생을 이 종이신문의 기사 속에서 밥 벌어먹고 산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이 변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종이에 매달린다고 할 수 도 있습니다. 인쇄 잉크 냄새나는 종이를 부스럭 거리며 넘기는 꼰대가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양과 변화를 감히 뒤쫓아 갈 수 있으려나 걱정되기도 합니다.

사실 정보를 어떻게 접하고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종이냐 온라인이냐는 수단일 뿐 그 안에 담긴 정보는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사회의 정보를 모으고 편집하여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곳이 언론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유통되는 정보도 언론사에서 만들어낸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보여주는 수단이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종이와 온라인으로 보이는 정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종이에는 언론사에서 그날의 정보 경중에 따라 배치를 달리하고 있기에 어떤 것이 더 가치를 갖는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면에 따라 한꺼번에 보이는 기사로 인해 종합적인 안목을 부지불식간에 키울 수 있습니다. 제목과 부제목만 읽는다고 해도 관련되는 사회 분야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온라인에서 기사를 볼 때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종이신문을 넘기면서도 발생하는 확증편향의 신문 읽기는 분명 있겠지만 온라인의 확증편향과는 천지차이입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초기 화면에 기사들을 나열해 보여주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검색창에 알고 싶은 내용과 단어를 입력하여 펼쳐지는 기사들을 읽게 됩니다. 다른 관점의 기사와 콘텐츠들이 뭐가 있는지 읽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점점 편 가르기식으로 양분화되어 가는 원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미디어트레이닝 강의를 하러 교육원에 가면 항상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집에서 종이신문 보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합니다. 추세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지 한 10년도 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대면강의를 못해 최근 3년간은 어떻게 변했는지 추세를 알 수 없긴 하지만 그전에는 강의 수강생 중 15-20% 정도가 손을 들었는데 해가 갈수록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어떤 강의 때에는 1-2명만이 손을 들고 어떤 때는 아예 손드는 사람이 없기도 합니다. 종이신문이 쇄락할 수밖에 없음을 현장에서 봐왔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집에 아침 신문이 5개 정도, 저녁에 석간신문이 2개, 그리고 주간지 및 월간지도 때가 되면 여러권씩 왔습니다. 출근할 때 문을 열면 쌓여 있는 신문을 들여놓는 게 일일 정도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분리수거에 신문을 가지고 내려가기 위해 카트에 실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를  핑계 삼아 종이신문을 다 끊었습니다. 사실 저야 직업적으로 신문을 봐왔기에 집에서도 신문 구독을 했습니다만 집에서 신문을 읽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나오면 또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신문을 읽는 것은 현관문 열고 신문을 집안으로 던져 넣을 때 1면 제목만 곁눈질하여 읽거나 주말에 약속이 없을 때뿐입니다. 아이들은 아예 신문을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보던 종이신문 구독을 모두 끊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도 아직 종이 신문 넘기는 것이 저에게는 더 편합니다. 안정감도 있습니다. 요즘은 신문에서 잉크냄새가 안나기도 하지만 신문잉크 냄새의 막연한 추억도 있습니다. 저는 책상 위에 있는 종이신문을 1면만 일견하고 뒤로 넘겨 뒷페이지부터 앞쪽으로 넘기면서 읽습니다. 정치면 기사가 실리는 앞쪽 기사에 대한 혐오와 본능적 회피가 작동해서 그런가 봅니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은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문을 읽을 때도 확증편향을 넘어 회피 본능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사건 사고의 기사를 읽기보다 가슴 훈훈하고 감동적인 내용의 기사와 사진을 보고 싶습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는 쓰기 쉽지만 감동을 주는 기사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발로 뛰고 현장에 있어야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휴대폰과 컴퓨터 화면으로 보이는 차가움을 종이의 질감으로 보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종이신문이 불쏘시개의 발화점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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