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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6. 2023

군주가 말실수를 했을 때 책사는 어찌해야 하는가?

조직에 있는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실수를 어디까지 커버해야 할까? 다양한 상하관계가 있을 수 있고 직급체계에 따라 업무상 직접 연관성이 없을 수 도 있으나 그냥 편의상 윗사람이라고 칭하자. 


윗사람이 어떤 말을 했고 그 말이 합당한 지, 타당한지, 합리적인지, 상식이 있는 것인지, 역사의식이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가치판단은 내려놓자. 그것을 언급했다가는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수 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렇게라도 disclaimer를 걸러놓는 것은 스스로 자정하고 정제해야 한다는 피해의식의 회피본능을 자극하는 여러 현상을 봐왔기 때문에 길러진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기업의 회장이 되었든 대표가 되었든 어떤 조직의 수장이 하는 말과 행동이 정당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게 비쳤을 때 이 상황을 어떻게 전환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지 않고 원만하게 무마할 수 있느냐로 고민하는 책사들의 입과 행동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실 전제는 간단하다. 수장이 오해살 만한 말을 안 하면 된다. 정제된 말을 하도록 훈련하여 차라리 앵무새처럼 말을 하면 밑에 있는 직원 입장에서는 그나마 안심이라도 할 수 있다. 써준 것만 읽었다는 과거 정부의 어느 분처럼 말이다.


그러나 수장도 감정을 가진 인간인지라 부지불식간에 예상치도 못했던 말들이 튀어나오고 행동이 나온다. 언론 및 반대 진영에서는 그러한 것도 놓치지 않고 끄집어내어 흠집 잡기의 도구로 활용한다. 내가 잘해서 좋아지는 것은 힘들지만 상대방을 끌어내려 나보다 낮추는 전략만큼 효용성이 큰 무기도 없다. 기를 쓰고 상대방의 약점잡기에 혈안이 되는 이유다.


하지만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경우가 더 많다. 말을 해 놓고도 그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 문제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고 행동을 했겠는가? 문제 될 것을 알고도 했다면 고도의 전략을 숨긴 제갈공명의 지혜를 겸비한 수장임이 틀림없다. 전략적인 말실수는 오히려 문제가 안 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의도적으로 실수를 했기에 상황전개가 어떻게 갈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군이 그냥 내뱉어진 말들을 어떻게 주워 담느냐다. 본인이 바로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면 끝나는 게 보통이겠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사건의 불쏘시개이자 원인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밑에 있는 책사들은 어떻게든 주군이 뱉어놓은 말들을 주워 담기 위해 온갖 변명을 하고 "오해다"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를 빼고 읽어서 그렇다" "한 문장을 볼 것이 아니고 앞 뒤 문장과 문맥을 잘 헤아리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정황 설명을 한다.


책사의 입장에서는 "주군의 말은 항상 언제나 진리이며 틀린 말일 수 없다"가 정답이어야 한다. 틀린 말이나 잘못된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군은 말은 무조건 옳아야 한다. 주군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만드는 레시피를 내놓는 것이 책사의 임무라고 여긴다.

이 레시피를 어떻게 내놓고 조작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책사로 오래 생명력을 유지하는 길이다. 살아남기 위한 책사의 계략들이 등장한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되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되지도 않는 문장이 나오고 변명이 나오고 하다 하다 명예훼손과 고소 고발이 등장하고 회유와 협박까지 나온다.


말이 무섭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말이 한번 꼬이면 쉽게 풀리지 않는다. 꼬인 말을 위해 다시 말을 꽈야 하기 때문이다. 꼰다는 것을 거짓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본질을 바로 꿰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게 되는 현상의 반복이 이어진다. 전개되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 그때서야 "실무진의 오해가 있거나 의사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이 등장한다. 이미 늦었다. 사과문 내봐야 다시 공격의 포격을 맞는다. "진정성이 없다"거나 "변명으로 일관한다"거나 다시 두들겨 맞는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진실함에 있다. 진실함에도 항상 감정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커뮤니케이션 오해는 초기 진화가 생명이다. 설사 말실수를 했다고 하면 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정정해야 한다. 문제는 군주나 윗사람이 한 말이라는 거다. 어떻게는 말을 덮어야 하고 가려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초기 대응이 안 되는 이유다. 


감히 "잘못 말씀하셨는데 사과하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충언을 할 수 있는 책사가 있을까? 이런 책사를 곁에 두고 있다면 군주의 인품이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책사나 부하직원은 흔치 않다. 아니 감히 없다고 할 수 있다. 방울 달려던 책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좀 더 입안의 혀처럼 움직이는 책사로 대체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완장이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그 자리에 완장차고앉으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렇게 하라고 자리 주고 완장 채워주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게 자리이고 완장이다. 군주를 모시는 책사들은 더욱 그렇다. 인품이 훌륭하고 언행이 올바른 군주를 모시는 것은 책사들의 꿈에서나 존재하는 신기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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