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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7. 2020

감각 세우기

컴퓨터 앞에 앉은 지금,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봅니다. 오감을 열고 감각이 받아들이는 상태를 하나씩 주시해 봅니다. 시각은 화면에서 하나씩 늘어나는 까만 글자를 따라가고 미각은 머그잔에 퍼진 블랙티 찻잎에서 쏟아내는 연 노란 맛을 추적합니다. 촉각은 오로지 손가락 끝에 감지되는 자판의 무감각함만을 인지합니다. 불현듯 귀 뒤쪽이 간지럽고 눈썹 위도 간지러운듯함을 느껴 긁어주고 싶어 집니다. 청각은 천정에서 흐르는 공조기의 바람소리와 저 멀리 사무실 끝에 켜놓은 텔레비전 속의 아나운서 목소리만이 가늘게 들립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없지만 그저 떠든다는 통념이 접목되어 말하고 있는 상황임을 인지하게 합니다. 후각은 감지되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분명 수많은 냄새와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가고 있겠지만 당장 신경이 후각으로 몰릴 만한 자극이 없습니다. 이는 쉽게 향에 적응해 버리는 후각기능의 역할 때문에 그렇습니다. 범주화가 빠를수록 다른 향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감각을 지켜보는 동안 직원 서너 명이 출근을 하며 인사를 합니다. 감각이 한순간에 무너져 시각으로 쏠려 갑니다. 감각이란 이렇게 한 순간순간을 잡아내고 놓치고 합니다. 그 한순간 무엇을 잡아내고 집중할 것인가가 향후 벌어지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게 합니다. 감각을 통한 인지적 능력이 지속되면 그것이 경험이 되고 반응 속도를 만들어 갑니다. 옷을 감싼 신체의 모든 부위를 제외하고 바람과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얼굴과 손은 그래서 중요한 자연을 향한 창구입니다. 자연을 받아들이고 직감하는 최일선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맨발로 다니고 시냇물 흐르는 계곡에 앉아 온 몸의 감각을 솜털처럼 곧추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털을 벗어낸 인간의 감각은 그만큼 예민하게 자연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민한 감각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온통 감각에 신경을 집중해보면 됩니다. 식물이 숨 쉬는 것, 모니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자, 콘크리트 벽면이 산화되는 현장까지도 보이게 되고, 팔장끼며 기대온 연인의 체온까지 끌어올 수 있습니다. 감각을 세우면 날까롭고 예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수렵채집 생활에 익숙했던 감각을 그동안 우린 잃어버리고 잊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감각은 '몸을 이용한 느낌'의 총칭입니다. 아침 전철에서 잠시 펼쳐 든 스티븐 슬로먼의 '지식의 착각'이라는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이 오버랩됩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기억하는데 몸을 어떻게 이용하는 걸까요? 마음은 뇌에서 추상적인 계산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정보 처리 장치가 아닙니다. 뇌와 몸과 외부환경이 협력해서 기억하고 추론하고 결정합니다. 지식은 뇌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분포합니다. 생각은 뇌 안의 무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고 생각은 뇌와 몸과 세계의 지식을 활용하여 지적 행위를 지원합니다. 마음은 뇌에 없습니다. 그보다는 마음에 뇌가 있습니다. 마음은 뇌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동원해서 정보를 처리합니다"


몸의 감각을 곧추 세우는 일이야말로 마음과 자연과 자신을 같게 만드는 길임에 동의합니다. 굳이 명상을 하고 세속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다가오는 모든 감각에 침잠하다 보면 자연은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보이고 느껴지고 만져지는 그런 존재입니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인데 달력을 건너보니 이번 주는 3일만 일하면 공휴일과 연결되는 황금연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과, 근로자의 날이 주말과 연결되어 4일을 내리 쉬게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음 주까지 진행되어 외출이 망설여지고 자재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마스크 쓰고 2미터 거리두기를 지키며 조금씩 자연의 풍광 속으로 들어갈 볼 일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워볼 시간입니다. 나뭇잎 키우는 소리, 물속의 물고기가 하품하는 소리, 태양빛 잦아든 어스름 녘에 새들이 코 고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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