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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8. 2023

장모님의 놀라운 힘

어린이날이 주말과 연결된 연휴이고 바로 어버이날과 이어져, 집집마다 가족행사들이 있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간단히 동네 맛집을 찾아 식사하는 집들도 있을 테고 3일을 내리 쉬는 관계로 조금 멀리 가족여행을 가는 집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로 스케줄을 짠 집도 있을 테고 집안의 어르신 연령대 및 취향에 맞춰 일정을 짠 집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이벤트 및 일정을 보냈든 각각의 의미는 소중한 시간들의 축적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비중과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가장 최적의 상대적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3일 연휴 동안 강원도 양양을 다녀왔습니다. 장모님과 와이프 그리고 막내처제 등 3명의 여자를 모시고 갔습니다. 집에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같이 안 간다고 하여 결성한 여행 조합입니다. 집에 아이들이 20대 중후반에 들어서 있는지라 어린이날을 잊은 지 오래되어, 근래에는 어버이날 위주로 집안 행사가 벌어집니다. 애들이 크니 은근히 이번 어버이날에는 아이들이 어떤 선물을 해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사람마음 정말 간사합니다. 그런데 어버이날인 오늘 아침까지도 선물에 대한 아무런 징후가 없네요. 저녁까지 기다려봐야 할까요? 그냥 기대만 했다가 헛물만 켜고 내일을 맞지나 않을까요? 초조하게 기다려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어린이날 아침 일찍 장모님을 모시고 양양행 고속도로에 올라섰습니다. 3일 연휴인지라 강원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예상은 쉽게 되는지라 언제 출발하는 것이 그나마 조금 더 막힐 것인지 고민하다 결정한 시간입니다. 경기도 권역을 벗어날 때까지 지루하게 막히기도 했지만 홍천휴게소에 한번 들르는 것까지 3시간 반 정도 소요되어 동해안의 바다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려갈 때부터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내려갈 때부터 뿌리기 시작한 비는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장맛비 내리듯 했습니다. 비는 귀경하는 어제가 되어서야 갰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자연의 순환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요.


양양 속초 강릉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안 가본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관계로 그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고 맛집 투어 위주로 일정을 조정합니다. 막국수집, 감자옹심이집, 초당순두부집, 물곰탕집, 횟집 등등을 찾아 식사를 하고 비가 억수로 내리는 일요일 오후에는 안목해변 보싸노바 커피숍에서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는 물멍도 했습니다.


특히나 장모님은 불교신자이신지라 솔비치리조트 근처의 낙산사와 휴휴암은 비가 오지만 꼭 방문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장모님은 올해 88세이십니다. 무릎 관절 수술도 하여 지팡이를 짚고 옆에서 부축을 해야 천천히 걸으십니다. 오래 걸으시지 않도록 식당이나 관광지, 리조트 입구에 차를 대고 내려드리는 센스는 사위의 몫입니다.

저는 한때 개신교를 다니다 지금은 탕아의 길을 걷고 있는 처지이지만 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는지라 사찰을 들어서면서부터 행하는 장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릎관절이 안 좋아 걸음걸이도 신통치 않으신데 사찰 본당에만 들어가시면 절을 20번도 넘게 하십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낙산사 본당은 보타전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입니다. 비 내리는 의상대길을 지팡이와 부축을 받고 쉬엄쉬엄 걸어 올라갑니다. 그리고 보타전 앞에 지팡이를 놓으시더니 신발을 벗고 본당에 오르십니다. 쓰러지실까 염려가 될 정도입니다. 가만히 본당밖에서 장모님의 움직임을 지켜봅니다.


정면에 조성되어 있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일곱 번 절을 하십니다. 걸음도 간신히 걸으시는 몸으로 어떻게 절을 저렇게 여러 번 할 수 있을까 의아해집니다. 일곱 번 절을 하시더니 다시 좌측과 우측 보살상을 향해 각각 일곱 번씩 또 절을 하십니다. 도합 21회나 됩니다. 신체 멀쩡한 저보고 그렇게 절을 하라고 해도 무릎이 시큰거릴 텐데 말입니다.


당신의 신체가 아픈 상태를 어떻게 그렇게 이겨낼까요? 종교의 힘일까요? 자식들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부모님의 지극정성 기도가 신체적 아픔을 잊게 하고 참게 만드는 것일까요? 


장모님의 절하는 능력은 휴휴암에서도 똑같이 재현됩니다. 사흘동안 장모님을 모시고 다니며 제일 신기했던 장면입니다. 휴휴암에서 절을 통한 기도를 마치고 본당을 내려오시는데 부축을 하고 지팡이를 건네드립니다. 이마에 땀에 흥건히 배어 있습니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시며 "운동 잘했네"라고 하십니다.


이틀 동안 사찰을 찾아 절을 하며 기도하는데 어떤 염원을 간절히 비셨을까요? 당신이 좀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식들 몸 건강히 하는 일 잘되도록 해달라고 소원하셨을 겁니다. 저처럼 안 믿는 자들은 그런 기도가 부질없는 짓일 거라 생각하지만 간절한 사람에게는 절실한 기도이자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으로 작동할 겁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아픈 관절을 구부리고 20번이 넘게 절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장모님 마음 같으실 것입니다. 자식들을 향한 눈물겨운 지극정성을 품고 계십니다. 절을 마치고 나오시는 장모님의 손을 잡아 부축해 드립니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계십니다. 그만큼 힘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절을 마치고 "운동 잘했다"는 소리는 당신의 임무를 다 했다는 반전의 뜻임이 분명했습니다. 


어버이날입니다. 부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서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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