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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1. 2023

서점의 책향(冊香)

가끔 오며 가며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르게 된다. 신문을 넘기다 눈에 띄어 적어놓은 책 제목을 검색기에 입력하고 책의 위치를 찾아간다. 사러 간 책을 손에 들고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는 다른 책들의 제목을 일견 한다. 참 많은 책들이 교체되어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책 한 권 한 권마다 저자의 혼신의 노력과 지적 통찰이 녹아 있음을 안다. 주제넘게도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책을 출간해 본 입장에서 모든 저자는 존경스럽게 보인다. 비록 한 페이지 읽은 가치도 없는 책이 있다고 폄하할 수 있는 수준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그것조차 쓰레기를 엮어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니 얼마나 눈물겨운 산고였을지 존경해마지 않는 게 예의인 듯싶다. 책 한 권 엮어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항변이다. 


서점은 지금 우리 시대의 모든 지식이 전시되어 있는 종합공간이다. 그래서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약간의 가슴떨림이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날 수 있다는 호기심과 우연히 손에 잡은 책의 표지를 넘기고 목차를 들여다볼 때의 생소함은 늘 짜릿한 설렘이다.


사실 내가 서점에 들르면 발길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평소 관심분야인 자연과학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쪽이다. 서점 전체에서 한 귀퉁이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분량의 종이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그중의 한 페이지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점에 갈 때마다 내가 너무 모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너무 한쪽에 치우쳐 생각하고 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가끔이라도 서점에 들르는 이유다. 서점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된다.

책 읽기의 편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에 관심 있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이 베스트셀러들이 순위별로 꽂혀있는 코너를 지나가는 일이다. 요즘은 분야별로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들을 전시해 놔서 최근 독서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이 배경에 깔려있음도 안다. 조작된 트렌드라고 하더라도 어떤 분야들이 조작되고 있는지를 꿰뚫어 보는 것도 능력이고 자주 보면 보인다. 1년에 한두 번 서점에 들를까 말까 하면서 트렌드를 읽느니 어쩌고 하는 일은 가소로운 일이 된다.


이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 중에 빠지지 않고 꽂혀있는 분야가 자기 개발서들이다. 뭔가 안되는데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가 드러나는 현장이다. 나의 능력을 개발하고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사실 자기 개발서들이 보여주는 줄거리는 대동소이하다. 현안을 보는 관점과 태도(attitude)에 대한 지적, 그리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뚜렷한 목표와 계획(plan)을 가지고 반드시 실행(action)에 옮기는 실천을 강조한다. 많은 자기 개발서 책들은 이 줄거리의 변형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은 쉽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강조되고 있고 그 유혹의 결과물들이 스테디셀러 코너에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는 것과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 손에 쥐는 것은 종이신문을 읽는 것과 온라인 뉴스를 접하는 차이와 비슷하다. 세계여행을 TV화면으로 하는 것이 온라인 여행이라면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보고 바람결의 온도를 얼굴피부로 느껴보는 여행의 차이와도 같다. 방대한 자연의 풍광을 아무리 카메라 렌즈 안에 담아보려고 해도 다 담기지 않는 것과 같다.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것과 인화지에 담아놓은 풍광의 차이는 직접 보고 체험한 사람의 말없는 미소 속에서만 존재한다.


분위기, 환경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온통 책만 보이고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책의 세계를 유영할 수 있게 된다. 온라인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만나고, 하고 싶은 것만 보게 되지만 서점을 한 바퀴 걷는 일만으로도 나와는 무관할 것 같았던 분야의 책들을 통해 다름을 접할 수 있다. 서점은 다양성과 통섭의 용광로다. 각론으로 펼쳐 보여주기도 하고 개론으로 간추려주기도 한다.


"서점에 언제 가봤지?" "책을 손에 들어본 지가 언제지?"라고 되묻는다면 반성해야 한다. 유튜브나 SNS의 단품 동영상에 홀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현상은 자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영상이 흘러가는 데로, 재미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기 개발서가 계속 꽂혀있게 하는 명분만 제공할 뿐이다. 서점과 도서관은 다름을 펼쳐 보여주는 다양성의 힘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곳이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연초록 나뭇잎이 봄볕을 가려주는 그늘에 앉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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