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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0. 2023

스마트폰 용도가 카메라? 컴퓨터? 전화기?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종들과 구분할 때 언어와 도구의 사용을 든다. 언어도 도구의 일종일 수 있으나 일단 나누어 보자.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모든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 군집화되면서 발달시킨 최고의 산물이다. 생각과 의식을 지배한다. 언어가 인간의 처음과 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인문학은 언어학이라 할 수 있다.


도구의 사용도 인간만이 고도화해 온 특징 중 하나다. 간혹 동물의 왕국에서도 도구를 사용하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하지만 제한적이다. 가늘고 긴 막대를 개미집에 집어넣어 딸려 올라오는 개미를 잡아먹거나 바닷가 갯바위에 붙어있는 굴을 돌로 깨먹는 침팬지도 있고 조개를 배 위에 올려놓고 돌로 내리쳐 깨뜨려 먹는 해달도 있다. 까마귀도 조개나 호두를 물고 공중 높이 올라갔다 바위로 떨어뜨려 쪼개 먹는다.


하지만 인간만큼 온갖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종은 없다. 심지어 이제는 도구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금단 증상도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베르그송이 규정한 '도구적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똑같은 도구조차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활용법이 등장하고 사용방법조차 다름을 보인다. 속칭 찜발이라고 하는 스테인리스 찜 판 받침 채반의 경우, 아마존에서는 캠프 파이어할 때 장작들을 올려놓고 불을 피울 때 쓰는 도구로 판매되고 있다. 물 잘 빠지라고 만든 숭숭 뚫린 구멍의 용도가 캠프 파이어 불을 잘 지피게 만드는 공기구멍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구촌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만 해도 그렇다.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스마트폰 사용하는 방법이 현격히 다르다고 한다. 한국사람은 스마트폰을 음성통화용으로 사용하지만 상대방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반해 중국사람들은 문자 메시지보다는 영상통화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이는 스마트폰을 'PC'의 연장으로 보느냐 '전화기'로 보느냐의 관점에 따라 사용빈도 유형도 다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자 입력이 복잡해 문자 메시지 보내기가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일반적으로 한글 입력속도를 따라잡을 수야 없겠지만 중국인들의 한자입력 속도도 한글입력만큼이나 빠르게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 문자입력의 불편함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폰을 전화기 기능보다는 PC의 확장버전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한듯하다. 검색하고 문자 보내는 일에 익숙하다. 데스크톱 사용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행위가 자연스럽다. 이는 무선휴대폰의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바뀌기 이전인 90년대에 이미 한국은 PC통신의 시대를 거쳤기에 가능한 현상이기도 하다.


휴대폰이 단지 음성통화를 하는 도구였는데 PC의 기능까지 합쳐지는 획기적인 기술의 전환이 이루어지자 PC통신의 문자 입력에 익숙한 습관을 그대로 스마트폰으로 끌고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중국은 한국과 달리 휴대폰에서 곧바로 스마트폰의 세계로 들어왔다. 휴대전화의 연장선으로 스마트폰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문자 보내기로 안부를 묻기보다는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는 일이 더 일반적이고 QR코드 활용과 전자지갑 사용이 우리보다 훨씬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도구의 사용에도 공동체 문화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시대를 거쳐왔는지, 그 시대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따라서도 도구의 용도가 달리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구도 이럴지언대, 언어로 기록되어 합의한 명문화된 것들의 다름은 또 얼마나 천차만별일 것인가? 어떤 것이 더 낫고 어떤 것이 못하다는 가치판단을 들이댈 수 없는, 그 사회 그 문화만의 특징들로 나타날 것이다. 바로 정체성이다. 인간은 좀 더 게을러지기 위해 끊임없이 도구를 개발한다. 도구를 사용해야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해짐은 좀 더 게을러져도 된다는 소리다. 도구의 사용은 게으른 인간의 표상이 아닐까?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었던 수렴생활의 신체기능은 인간 DNA에 더 많이 잠재되어 있는데, 도구의 사용으로 몸의 움직임을 줄이는 게으름을 보여왔다. 이는 운동부족으로 인한 수많은 질병의 원천으로까지 연결되어 버렸다. 도구가 또 다른 도구의 출현을 만들어내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져 게으름조차 피울 수 없게 만들고 있는 현상이 더욱 난감하다. 도구를 연장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봐야겠다. 그래야 모든 도구들이 다시 보이고 활용도 달리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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