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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6. 2023

강남 산다고 모두 졸부는 아닐 텐데

출근해서 회사 이메일을 훑어보고 온라인 포털 사이트를 들어갔는데 재미있는 기사가 눈에 띈다. 좌파들이 싫어한다는 매체의 기사다. " 쇼핑카트 끌고 집에 가는 강남 아파트 주민들... 마트 측 추적기 달아야 하나"라는 기사다. 기사는 "강남고속터미널 근처의 킴스클럽 강남점에서 지역주민들이 쇼핑카트에 물건을 실은 채 자기 집까지 가고는 반납을 하지 않아 마트 측이 고민에 빠져있다"는 내용이다. 마트 인근 아파트를 찾아 현장 취재도 하고 주민들의 카트 이용에 대한 찬반양론을 다 다뤄 비난을 피해 가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래도 행간을 읽으면 몰상식한 몇몇 지역주민들의 시민의식을 질타하는 쪽으로 읽힌다.


내가 관심 갖는 건 이 기사 내용이 아니다.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들의 촌철살인 문구들 때문이다. "하는 짓은 거지 같은데 꼴에 강남 산다고 갑질은 해야겠고 ㅋㅋㅋㅋ" "시민의식이 개돼지니까 그러지. 지들만 편하면 그만이거든~ 남생각 절대 안 하는 이기주의 때문" "강남 산다고 갑질이 몸에 밴 건지. 저 행동이 절도라는 걸 아예 인식 못하고 있다는 게 충격" 등등이다. 아침 6시에 포탈에 올라온 기사인데 한 시간 반 만에 댓글이 350개가 넘는다.


시민의식을 집에 두고 쇼핑 나온 주민들도 분명 문제지만 사실 이런 사건이 기사로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해져가고 있다면 마트 측이 먼저 아이디어를 냈어야 맞다.


동네 돌아다니며 쇼핑카트를 수거하느라 인력과 비용을 들이느니 아예 쇼핑카트가 마트를 못 빠져나가게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를 놓고 카트가 없어지고 있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쇼핑카트를 집에 까지 가져가는 몰상식한 사람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킴스클럽 강남점은 그 지역 주민들의 쇼핑센터임은 만인이 다 아는 곳이다. 물건값이 싸고 주차하기 편해서 강북 사는 사람이 거기까지 가서 화장지 사고 배추 살 일은 절대 없는 쇼핑센터다.


기사 댓글 중에 있는 "캐나다에선 주차장을 벗어나면 카트가 움직이지 않음. 바닥이 같아 보이는데도. 이런 기술을 써야 할 듯"이 정답이다.

사실 대형 할인 쇼핑센터에 가서 이용하게 되는 쇼핑카트 바퀴에는 끝에 1cm 정도의 날이 서 있다. 경사진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서나 내려갈 때 쇼핑카트가 밀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날이 에스컬레이터에 나 있는 홈에 맞물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카트를 평평한 바닥도 아니고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로 끌고 다니면 바퀴 마모가 심해져 금방 훼손된다.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매장은 쇼핑카트 자체도 커서 감히 매장 건물밖으로 끌고 갈 엄두도 못 내게 하기도 한다. 또한 건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출입문 앞에는 카트가 못 나갈 정도의 경계석을 박아놓고 있다. 


끌고 가고 싶어도 끌고 갈 수 없게 만들어 놓는 것. 이것이 마트 측이 해야 할 일이다. 동네의 작은 마트처럼 구입한 물건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던지, 코스트코처럼 적당한 크기의 쇼핑카트를 아예 사은품으로 만들어서 주던지,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수거를 하던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지역 상생을 먼저 생각하는 게 올바른 로컬 마케팅이자 상술이다.


저 기사로 인하여 아마 마트 측은 오늘부터 주변 아파트 부녀회 사람들로 구성된 항의단을 맞아야 할 것이며 불매시위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불을 보듯 뻔하다. 쇼핑카트를 끌고 집에까지 가면서도 당당한 권리이며 편리함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주민들은 "주민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몰상식한 마트이며 이런 마트는 이 지역에 존재해서는 안된다"라고 핏대 세워 성토할 것이 틀림없다. 이 정도로 성질내지 못하는 사람은 쇼핑카트를 집에까지 끌고 가지도 못한다.


이제부터는 쇼핑카트를 마트 바깥으로 가져간 본질은 빠지고 엉뚱한 감정싸움으로 비화된다. 사건이 벌어지는 유형과 행태를 보면 이런 순서를 밟아 가는 사례들을 무수히 접하게 된다.


강남 사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곳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으로 매번 우파 정당을 당선시키지만 그렇다고 이분법적 사고로 강남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우스운 일이다. 강남좌파도 있고 갑질하는 졸부들의 행태는,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지역에서나 등장한다. 사람들의 행동 양상을 범주화시키고 형상화시켜 개념으로 만들어낼 때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잘못 인식된 패러다임에 갇히면 사람을 재단(裁斷)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혹시 강남 사시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힘내시라. 그렇다고 몰상식한 이웃이 있을 때는 가차 없이 지적질을 해라. 동네 품위 떨어진다고. 품위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갖춰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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