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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22. 2023

기억에 용역을 쓰면 감정이 사라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기억을 바탕으로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인간행동의 시작은 바로 기억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행동하지 못한다. 무의식적인 행동조차 자동반응으로 나타나지만 사실은 의식하지 못할 뿐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심지어 DNA에 각인된 본능조차 기억일 수 있다.


기억해내지 못하면 '내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 되었든, 은행에 입금한 돈이 되었든, 내가 기억하고 내가 알고 있을 때만이 '내 것'이다. 내가 머릿속에서 꺼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지 못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기억은 바로 주체를 의미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남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르다. 기억이 나와 타인의 경계를 구분 짓는다. 천차만별 백인백색의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다.


거기에다 기억은 감정을 만든다. 점점 사람들이 개성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된다. 기억되지 않으면 울 수 도 웃을 수 도 없다. 기억되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려 감정을 자극하지 못한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 가보면 혼주와 상주를 대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서로 다름을 볼 수 있다. 서로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감정조차 다르게 나타난다. "결혼식 축하객은 부모 손님이고 장례식 조문객은 자식 손님이다"라고 하는데 결혼식장만 예를 들어보자. 신랑 신부와 안면이 있는 축하객은 가까운 친척과 친구 외에는 전무할 것이다. 20-30대 신랑 신부일 테니 찾아오는 친구들의 숫자들도 제한적이다. 반면 대부분의 하객들은 신랑 신부의 부모를 축하하러 오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축하객들의 행동을 보면 혼주와의 평소 관계가 어떠했는지, 어떤 비즈니스 관계로 왔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손만 잡고 악수하는 사람, 어깨를 끌어안고 포옹하며 축하하는 사람, 배우자에게 반갑게 소개해주는 사람, 신랑 신부에게까지 인사를 시키는 사람 등등 제각각 행동을 보인다. 모두 서로의 감정 기억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그렇다.


최대한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도 풍부해지고 사람 관계도 좋게 유지할 수 있다. 우연히 길 가다 마주친 오랜 친구에게 "우리가 언제 봤지?"라고 되물을 것이 아니고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미국서 제임스 들어왔을 때 명동에서 만둣국에 같이 먹었는데 그 이후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비결이 뭐야? 운동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네."라고 선빵을 날리는 것도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기억은 디테일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비엔나 소지시 엮듯 단서를 잡아채 줄줄이 기억을 끌어올려야 한다. 기억하는 것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인하여 가족들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가끔은 누가 내 전화번호를 물을 때 휴대폰 전화번호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기억을 휴대폰과 같은 외장하드에 용역을 맡긴 꼴이다. 언제든 인터넷을 검색하면 정보가 들어있으니 굳이 귀찮게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외장하드는 언제든지 전기코드만 뽑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닿았거나 정전이 되면 어쩔 것인가? 정신줄도 놓아야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미 통신망만 차단되어 인터넷 연결이 안 되면 업무가 마비되는 사례들을 종종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기억을 외장하드에 용역을 주면 기억과 감정을 내 안에 저장하지 못한다. 내 브레인 외부에 있는 기억에는 감정을 싣지 못한다. 외부에 있는 정보가 내 지식이 아니고 내 정보가 아닌 탓에 어떤 정보, 어떤 사실, 어떤 일에도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저 외부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일뿐이다. 내가 같이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을 이유가 전무하다. 내 것이 아니고 나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용병이나 용역을 주기 시작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다. 스페인 서고트 왕국들이 내전으로 치달을 때 고용했던 아프리카 이슬람 무어인 용병들에게 오히려 점령당하고 1492년 레콩키스타를 이룰 때까지 무려 781년이나 지배를 당했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고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아우구스툴루스(Augustulus)도 476년 게르만 민족의 용병이었던 오도아케르(Odoacer)에 의해 멸망했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비졍규직이라는 미명하에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급여는 차별을 하는 용역이라는 근무 형태가 지금 우리 사회 근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1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사회, 경제가 다변화되어 일부 프로젝트를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용역은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스포츠계의 외국인 용병은 그나마 어항 속의 매기처럼 다른 선수들을 자극하는 쪽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인원수를 제한하고 잘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작동은 효율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외장하드로 기억을 옮겼을 때 더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은 아직도 진행형인 상태다. 하지만 기억이 감정을 만든다는 사실을 놓치면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활화산 용암 끓듯이 수시로 움직이는 것이 감정이다. 그 감정이 기억에 따라 조합을 달리한다.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해야 좋은 감정을 만들 수 있는 이유다. 좋은 생각, 아름다운 것들로 기억을 채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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