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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23. 2023

혼자 밥 먹은 적이 언제였나요?

근래에 혼자 밥 먹어본 적은 언제였나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심이든 저녁이든 혼자 밥 먹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일 겁니다. 직장생활을 하면 같은 부서 직원들이 항상 있고 비즈니스 관계로 식사 약속들이 계속 잡히게 되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참 코로나 팬데믹 동안에는 식당 좌석마다 칸막이가 쳐져있어서 들어갈 때는 같이 들어가도 혼자 식사하는 것과 진배없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혼밥 문화에 익숙해지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혼자 밥 먹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배우자가 여행을 갔거나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혼자 밥을 해서 먹는 경우는 예외로 치고 말입니다.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아는 독신으로 사는 여러 사람은 끼니때마다 정말 잘 차려 먹습니다. SNS에 가끔 올리는 요리들을 봐도 범상치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혼자 식사해야 할 때가 되면 망설이게 됩니다. 사무실에서 저녁 당직을 서야 할 때나 밀린 일이 있어 조금 늦게 퇴근하려고 할 때, 끼니를 굶자니 그렇고 식당에 들어가 혼자 먹기도 낯설어집니다. 그래서 손쉬운 혼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편의점 컵밥이나 라면을 먹거나 아니면 햄버거나 샌드위치, 김밥 같은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를 테이크아웃하여 사무실 책상에서 먹는 게 일반적입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는 것을 주저대는 이유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밥 먹고 있으면 괜히 친구도 없는 사람 같고 외톨이 왕따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남들은 아무도 혼밥 하는 사람에 대해 의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나를 친구 없는 놈으로 여기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일찍이 간파한 일본에서는 1인용 칸막이가 쳐져있는 라면집들이 생겨났고 이러한 1인용 칸막이를 설치한 분식점들을 요즘은 한국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웬만한 식당들도 아예 자투리 좌석을 1인 전용 좌석으로 만들어 혼밥 손님들을 챙기고 있음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사 기본 단가가 좀 나가는 레스토랑이나 일식집 정도만 돼도 1인 손님을 받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시간 피크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고급식당은 모임이나 사교, 회식 등을 위주로 하는 테이블 구성인지라 4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면 서비스한 만큼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당연할 겁니다. 식사 가격대가 비싸 보이면 식당에서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혼밥 하는 사람들은 일단은 꺼리게 됩니다. 혼밥 할 때는 격식을 차리고 음식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빨리 끼니를 때우는데 더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혼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세대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많아져 50대에 정점을 찍다가 다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듯합니다. 요즘 20-40대까지의 젊은 세대들은 혼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50대 정도의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이 혼밥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 세대들은 지금 자기 시대에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50대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혼자 있는다는 것, 특히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정점에서 밀려나 있다는 것과 동일시하게 됩니다. 이런 심리적 상황을 참지 못합니다. 


반면 직장을 은퇴한 세대가 되는 60대에 접어들면 혼자 식사하는데 익숙해지게 된답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식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점심 저녁 매일 만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식사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혼밥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설렁탕집이나 냉면집 정도는 어디 가면 있는지 꿰고 있게 된답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국밥집에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쓸쓸해 보이는 것이 아직까지는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약속을 잡습니다. "밥 한번 먹자"는 빈소리가 그냥 나온 게 아닌 듯합니다. 빌 지도 모르는 식사시간에 땜빵으로 자리를 함께 해줄 사람을 포석으로 깔아놓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결코 밥 한번 같이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어차피 예의상 던진 말이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정말 선약이 없거나 깨져서 비어버린 식사시간에 대타로 등장시킬 수도 있는 정도의 관계유지용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식사를 안 해도 그만이지만 어쩌다 얻어걸려 식사를 같이하면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식사시간은 커뮤니케이션 시간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대화를 하면 상대방도 더 좋게 보이는 것이 인간심리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온갖 사회적 만남과 섭외는 식사 약속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한다는 것은 오감을 모두 동원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맛있는 식사를 같이 했다는 동질감은 유대감도 강화시켜 줍니다. 그 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는 힘을 발휘합니다. 집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이 되고 비즈니스에서는 사업계약으로 이어집니다. 반주가 술자리로 이어지면 분위기는 더욱 배가됩니다. 그렇게 접대라는 것으로까지 확대됩니다.


여기에 언제부터인가 혼밥 시간이 은근히 끼어들었습니다. 혼밥 시간은 편안함을 기본으로 깔고 있습니다. 가볍게 키오스크에서 새우버거 하나와 콜라를 사들고 공원벤치에 앉아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쓸쓸함이나 처량함보다는 가끔은 이것이 여유로 다가옵니다. 점심식사 약속이 없으면 웬만하면 직원식당에 올라가 후다닥 먹고 끼니 때우는 수준으로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말입니다. 혼밥에 대한 적응일까요? 오늘도 점심약속이 있어 이런 혼밥의 여유로움에 대한 호사는 물 건너갔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와 뒷담화가 이어지고 무얼 먹었는지도 모르고 식당을 나와 입가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겠지요. 


아니 이제부터는 혼밥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할게 아니고 한 끼 정도 건너뛰는 금식을 해서 혈당을 조절하고 체중을 줄여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음에 화들짝 놀랍니다. 시간은 신체 바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고 혈관에 쌓이고 심장에 쌓이고 브레인에 쌓이고 있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체 건강의 시간을 늦추는 방법은 적게 먹는 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음에도 사회생활하며 조절하는 게 쉽지 않음도 압니다. 그래도 혼밥을 할 수 있을 때라도 적게 먹는 지혜를 발휘하여 병원의 담벼락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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