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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25. 2023

전화벨 소리 사라진 사무실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쓸까? 아니면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할까? 말과 글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기에 같을 거라 생각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말은 청각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고 글은 시각을 사용한 의사전달 수단이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의사전달 수단으로써 글은 말보다 훨씬 뒤에 개발된 인간 고유의 도구다. 물론 말도 인간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도구이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은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지 못하는 현장성이 강하지만 글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기록이 된다. 말은 순간적이지만 글은 영원이 된 것이다. 이런 차이조차 인간은 기계를 활용하여 녹음과 녹화를 해 놓음으로써 글의 기능과 유사한 기록으로 발전시켜 간극을 좁혀 놓았다. 


의사를 전달할 때 말과 글, 두 가지 도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명확한 주체가 드러난다. 말을 할 때는 얼굴표정과 제스처가 함께 작동한다. 말의 소리조차 음의 높낮이를 통해 감정을 실을 수 있다. 말은 의사전달의 총합이다. 말하는 사람이 주체다.


반면 글도 쓴 사람의 의도가 담긴 내용이긴 하지만 오로지 읽는 사람의 시선에 의지를 해야 하므로 써놓은 글은 읽는 사람이 주체라 할 수 있다.


글에 감정을 담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써봐야 한다는 것이다. 써보면 말과 글이 현격히 다름을 눈치챌 수 있다. 글이 말하는 것처럼 그냥 술술 써지는 것 같지만 막상 글자를 하나씩 써나가다 보면 용이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한두 줄 쓰는 거야 그렇다고 치고 문장을 일목요연하게 엮어서 한두 쪽으로 늘려나가려고 하면 장벽에 부딪친다.


말은 한 문장뒤에 바로 이어지는 문장의 상관관계만 있으면 듣는 사람이 문맥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이 소리 했다 저 소리했다 왔다 갔다 해도 별로 이상하게 듣지 않는다. 회사 이야기 했다 여행 갔던 이야기로 전환했다 다시 친구이야기를 했다 소위 수다를 1시간 이상 떨 수 있는 이유다. 수다 떠는 상황을 그대로 글로 옮겨 놓으면 기승전결도 없고 중구난방에 뭔 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한심하게 읽힌다.


글은 한 문장 뒤에 따르는 문장이 반드시 앞 문장의 뜻과 의미를 함께 담고 이어져야 한다. 글의 문맥을 일정하게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말과 글이 다른 이유다.

살면서 하루 중 말과 글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사용빈도를 들여다보면 휴대폰 문자메시지 기능의 발달로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 비율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요즘 사무실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절간처럼 조용하다. 하루종일 직원들 간에 오가는 대화는 출근할 때 인사말 소리와 퇴근할 때 안사말 소리일 경우도 있다. 회의 시간이 아니면 근무시간 중에 직원들 간의 대화는 많은 경우 메신저를 활용해 오고 간다. 하루종일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좌르르 좌르르 흐를 뿐이다.


카톡과 같은 메신저의 발달로 이젠 외부로부터 걸려오는 유선전화벨 소리도 듣기가 희귀해졌다. 정말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유선 전화벨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다. 팀별, 부서별 카톡방이 마련되어 있어 일상적인 회의나 전달사항은 이들 공유 카톡방을 통해 공지된다. 점점 사무실에서 말이 사라지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여기저기서 전화벨 소리 울리고 통화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근무하는 시끄러운 사무실 분위기보다 조용하게 자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더 근무효율이 높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넓지 않은 사무실 공간에서조차 이렇게 말을 하기보다는 메신저를 통해 궁금증을 묻고 업무의 진척을 상의하다 보면 정보 공유가 오히려 안 되는 현상을 만나게 된다. 회사 사무실 공간이라는 것이 직원들마다 방을 하나씩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팀별, 직원별 칸막이 정도가 설치되어 있는 수준이 보통이다. 옆에 직원이나 선배들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는데, 사실은 이것이 공해가 아니고 업무 분위기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의도치 않게 듣는 와중에 어떤 사안 때문에 통화하는지, 선배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지 학습할 수 있다. 문자를 통해서 외부와 의사소통을 하는 거였다면 전혀 알아챌 수 없는 것을 전화통화 상황하에서는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아날로그라 할 수 있고 글은 디지털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수단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금은 문자 메신저로써의 디지털이 말이라는 아날로그를 앞서 가고 있는 분위기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글을 잘 써서 의사전달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단문 위주의 문자 메시지는 아무리 많이 써도 긴 글을 써서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전달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문장은 점점 짧아지고 이제는 아예 이모티콘으로 대신한다. 독심술이라도 깨우쳐야 할 판이다. 화면에 쏟아지는 수많은 이모티콘이 한눈에 척 상대방의 의도를 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이미 한 단계 너머를 넘겨짚어야 하는 의사전달 방법이다. 


결국 사람은 만나야 한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언쟁하고 심하면 몸으로 부딪혀 격론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인간 냄새나는 소통이 더 쉬워진다. 오해 없이 상대방의 의도를 알게 되고 진실함을 보여줄 수 있다. 만나지 않고 보낸 문자 메시지는 상투적으로 보일 뿐이다. 읽지도 않고 지워버리는 쓰레기일 뿐이다. 말과 글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일단 나를 보여주는 만남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감도 있고 술 한잔도 오고 가게 된다. 글은 그다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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