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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26. 2023

'안다'는 것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안다'라고 할 때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의식이나 감각으로 느끼고 깨닫는다는 것이다. 교육이나 경험, 사고를 통해 정보나 지식을 보태는 일이다.


이 '안다'의 시작은 차이의 비교에서 나온다. 차이는 다름이다. 이것과 저것의 다름의 정도를 아는 것. 그것을 안다고 한다. 차이가 남을 알지 못하면 결정하지 못하고 선택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사 모든 일은 알게 모르게 차이를 선택하는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결국 '안다'는 것은 세상을 사는 방법 중에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가지게 한다. 많이 넓게 알아야 하는 이유다.


차이를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원리나 다름없다. 움직이는 생물을 잡아먹는 모든 동물도 멈춰있는 것과 움직이는 것의 차이를 통해 먹잇감을 알아차리고 심지어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조차 풀의 길이와 색, 냄새의 차이를 통해 구분하여 취식을 한다. 하물며 인간이야 오죽하겠는가? 삶 자체가 차이를 인식하도록 진화를 해왔다.


차이를 알아야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할 수 있어야 예측이 가능하다. 예측한다는 것은 생존을 결정짓는 키워드다.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쁘면 버릴 수 있다.


이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차이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웬만한 관심과 집중 없이는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능과 관습, 학습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일 뿐 그 미세한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고 지나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고 되물어보지 않았기에 그냥 그렇게 당연히 그렇게 되는 줄 아는 정도다.


보통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사건을 만나면 신기해한다. "와우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정도의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마술이 대표적인 경우다. 눈속임인걸 안다. 그럼에도 어떻게 속이는지 모르기 때문에 신기해한다. 바로 신기하다는 것은 예상하거나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예상 못했다는 것은 질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묻지 않았기에 들여다보지 않아서 신기할 뿐이다. 마술이 펼쳐지는 이면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되면 "애개 저렇게 속이는 거였어" 정도로 폄하한다. 버젓이 속아놓고 말이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차이를 물어야 한다. 물어야 알게 된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는데 그 알게 되기가 쉽지 않다. 시간과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안다는 것은 어둠의 장막을 하나씩 걷어내는 것이다. 어둠과 무지를 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 앞 선 사람들,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길을 나섰던 사람의 뒤에 서는 일이다. 혼자 개고생 하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길을 닦아놓은 선구자들이 계신다. 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에 차고 넘친다. 요즘엔 유튜브에도 스며들어 있다. 잘 골라야 한다. 차이를 비교하여 선택을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유사과학에 빠져들고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어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적당한 때 적당한 장소(right time, right place)에 내가 있는 적소성을 운이라고 한다. 바로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춰 자기를 세팅하는 일이다. 책을 잘 만나는 일, 사람을 잘 만나는 일, 어떤 좋은 기회와 상황에 노출되는 일 등등, 세상 모든 일에는 이 TPO가 얼마나 잘 맞아떨어졌느냐가 결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그 중간중간 결정적 시기에 어떤 TPO가 작동되었는지가 현재의 내 삶을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전문가는 남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일상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 차이를 발견해 내는 사람들이다. 요리사는 맛의 차이를 감별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고 악기 연주가는 미세한 음의 차이와 조화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각자의 상황에 따른 TPO에 최적으로 적응하고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좀 더 맛있어지고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은 병에 따라 약을 주듯이 듣는 사람의 이해능력에 맞추어 그에 맞는 가르침을 말씀으로 주셨다.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한다. 부처님은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본질까지 꿰뚫어 본 사람이다. TPO에 가장 충실했던 선지자시다. 


이제 본능적 수준의 차이 감별을 넘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의 원천이 되는 차이를 발견하는데 오감을 동원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지적 차이를 줄여보겠다는 무모한 시도는 망상이 된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희열을 느낄 정도의 다가감이 필요하다. 안다는 것,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결정적 지식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와 궁금해 미치겠어" "어떻게 저 현상이 나타나는 거지?" "왜 그런 거지?" 물어야 한다. 알지 못하면 묻지도 못한다. 알아야 하고 물어야 하고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산다는 것이다. 나는 삶에 무엇을 묻고 있는가?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께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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