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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8. 2023

One more thing이 1+1과 다른 이유

"One more thing!"


"하나 더"라는 문장이 이렇게 관심을 집중시키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 단어 다음에 이어지는 몇 초간의 정적은 긴장이었다. 어떤 것을 내어놓을까?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One more thing'은 지난 월요일 애플의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팀 쿡 최고경영자가 혼합현실(MR) 헤드셋을 공개하면서 말한 문장이다. 스티브 잡스가 제품 발표회 마지막에 중요한 신제품을 소개할 때 써먹던 문장의 리바이벌이지만 이번에도 주효했다. 온 세계가 이 문장 다음에 등장하는 제품에 열광했다.


MR 헤드셋 프로비전이 맥 컴퓨터와 아이폰의 뒤를 이어 전자제품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지, 2011년에 등장했던 웨어러블 구글글라스의 한계를 뛰어넘었는지는 차지하고 'one more thing'라는 문장이 주는 전환의 순간에 집중해 보자.


one more thing은 자신감이다. "드러낼 수 있다." "보여줘도 좋다"라는 확신이다. 이런 자신감과 확신이 없이는 '하나 더'를 외칠 수 없다. 그 자신감이 무모할 수 도 있고 과신일 수 도 있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 더'를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하나 더'는 시장 주도자가 썼을 때 더 빛을 내는 문장이 된다. 이미 최고의 제품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데 추가적으로 '하나 더'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추격자인 2등이 1등을 따라잡기 위해 내놓은 1+1의 '하나 더'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끼워팔기로 주는 '하나 더'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 더'가 어떤 상황, 어떤 위치에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문장의 품위가 결정되고 제품의 존재 서열이 정의된다. 팀 쿡의 'one more thing'은 덤으로써의 '하나 더'가 아니다. 시장을 바꿀 '결정적 제품'으로서의 '하나 더'다. 세계가 '하나 더'에 주목하는 이유다.

'one more thing'이 있다면 'one more time'도 있다.


'one more thing'은 결과이고 'one more time'은 과정이다. 'one more thing'은 결과물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one more time'은 도전이다. 'one more time'은 '한번 더' 시도하고자 하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의 외침이다.


'하나 더' '한번 더'에서 방점은 one에 있다. 한번 더 하고 하나 더 내놓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렇게 하나에서 시작하여 만들어지고 이루어진다. 


세상이 단어에 의해 지배되는 생생한 현장이다. 단어 하나에 감정이 실리고 관심을 집중하게 하고 의미를 부여해 무언가 형상을 만들어내고 이에 도전하게 한다. 호모사피엔스가 도구를 만들어내고 행동을 하는 원천조차 단어 속에서 나온다.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평론가와 뜨거운 가슴의 언어로 표현해 내는 시인과 음악과 미술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법칙을 '수'의 연산을 통해 규칙을 찾아내는 수학자의 광기처럼 세상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의 고뇌를 숭배해야 한다. 앞 선 자들이 남겨놓은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뉴턴의 어깨 위에 앉아 세상을 보는 시선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one more time'과 'one more thing'을 배울 수 있다.


선지자들이 미리 보았던 세상의 움직임을 하나씩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언어로 말을 하게 될 것이고 물리학자의 눈으로 우주를 보게 될 것이며 무용수의 발끝으로 대지를 걷게 될 것이다. 그것조차 'one more' '하나 더' '한번 더'로부터 시작한다. 뒤에 붙는 명사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그래서 '한번 더' '하나 더'는 동사다. 움직임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주체성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한 걸음씩이라도 움직여 나아가야 바뀌는 세상에 맞설 수 있고 변화해 가는 세상을 볼 수 있다. 무엇이 됐든 '한번 더' '하나 더'를 향해 도전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소주 '한 병 더'는 아니다. 명사 선택을 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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