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un 09. 2023

해외여행이 자랑질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온라인 콘텐츠를 점령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해외여행 사진이나 동영상이다.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귀신같이 숨겨 자랑질한다. "나 거기 있었다"가 본질이다. 더 나아가 "너는 못 가봤지. 부럽지"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실제라는 현실에 현상을 덧입혀 감정을 자극한다. 자랑질은 사회적 인간의 본성이자 속성이다. 당연히 자랑질을 해야 한다. 누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갖고 있는 것조차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나 진배없다.


부러움과 경쟁을 부추겨 과소비를 조장한다고 비난을 할지 모르지만 그건 르상티망의 전형일지 모른다. 갈 수 있으면 가야 하고 볼 수 있으면 봐야 한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의 우열을 따질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도 전해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 속에 있는 주체가 아니꼬우면 귀신취급하면 된다. 형상을 지우고 배경사진의 모퉁이를 뽀샵해서 지워버리면 된다. 마음속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을 버리는 행위를 습관처럼 하다 보면 가능해지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사람은 안 보이고 멋진 배경만 볼 수 있는 신 끼를 발휘하게 된다.


이것도 귀찮으면 여행전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된다.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EBS의 '세계테마기행'같은 거다. 요즘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도 여행 콘텐츠를 다루고 있지만 그저 사람들의 뒤를 쫓아가는 카메라 워킹이라 여행의 본질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여행전문 프로그램들은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기보다는 자연과의 관계를 주로 보여주기에 대중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타국의 일상들, 지구 역사 46억 년의 세월 속에, 내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이 얼마나 작고 좁은 곳인지 느끼게 해주는 넘쳐나는 콘텐츠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이는 멋들어진 풍광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그 사진 한 컷, 동영상 한 장면을 위해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돈과 땀과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들 알겠지만 최저 가격의 올빼미 투어나 당일치기 여행 상품까지 등장하며 파격 세일을 날리고 있지만 짧게 3박 4일 정도 동남아만 다녀와도 돈 100만 원 깨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것도 럭셔리한 투어가 아니고 그저 그런 정도의 투어에서도 그렇다. 면세점 쇼핑 안 하고 온라인 택시 호출 어플인 그랩(grab)을 활용해 저렴하게 돌아다니고 추천 맛집 몇 개 찾아가는 수준이라고 해도 그렇다. 여행 다녀와서 모아둔 영수증 정리하다 보면 여기저기 잊고 있었던 카드 명세서가 벼룩처럼 툭툭 튀어나온다. 신기하다. 그러고 나면 통장에서 세 자리 숫자가 빠져나가고 그 줄어든 숫자를 보는 순간 망연자실해진다. 외장하드에 담아둔 사진을 보면서 위안을 삼으며 그래도 제주도 가는 비용보다 저렴할 거라고 애써 위로를 할 뿐이다. 여행 중독이다.


그래서 SNS에서 사진 한 컷, 동영상 한 장면 자랑질하면 감사해하고 고마워하며 봐줘야 한다. 나 대신 돈 써가며 유명 관광지 보여주고 멋진 풍광 보여주니 그런 위안이 따로 없다.

그런데 여행을 소비하는 문화가 너무 겉핥기식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여행이 뭐 그냥 편하게 놀다 오면 되고 쉬다 오면 되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이국적인 모습을 보면 되고 맛 난 것 먹으면 되고, 즐거운 것 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날리고 얼마나 좋아. 꼭 의미가 있어야 돼? 뭘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즐기다 오면 돼. 여행은 아무 생각 없이 다니는 게 최고야!"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렇게 다녀온 해외여행이 '나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고 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를 자문해 보면, 글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돈과 시간만 쓰고 남은 것은 사진뿐인 경우가 대부분일터다. 여행을 하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 거의 보지 못했다. 여행 다녀와서 스트레스가 풀려 일이 더 잘되고 사업이 번창했다고 하는 사람, 거의 못 봤다. 여행 다녀오느라 피곤하고 시차도 안 맞아서 며칠 고생했다는 사람은 수없이 봤다.


여행의 효용성이 자랑질에 그쳐서는 안 된다. 몇 개 국가를 가봤네 정도로는 요즘 명함도 못 내민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들을 속속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서다. 유명 관광지에 얼굴 내민 사진은 요즘 SNS에서 쳐주지도 않는다. 일반인들이 휴가 며칠내고 다녀올 수 있는 곳보다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니는 마니아들도 넘쳐난다.


그래서 요즘은 테마가 있는 여행들을 많이 한다. 대 자연을 보기 위한 여행, 미술 기행, 인문 여행, 와이너리 투어 심지어 현지 맛집만 골라 다니는 미식 투어 등등 관심 주제별, 취미별 투어들이 성행하고 있다. 가족여행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여행에서는 아이들 공부를 위한 박물관 투어위주로 일정을 짜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번 떠나면 3개국 정도는 기본적으로 발품 팔며 돌아다니던 추세가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이미 여행은 다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남들이 간다고 나도 따라가는 해외여행이 되면 안 된다. 제주도 여행이나 뭐 비용에 별반 차이가 없으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해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갈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나가려고 한다면 준비를 좀 하고 움직이자. 가고자 하는 지역의 역사, 인문, 지리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가자. 그래야 현장에서 실체로 느낄 수 있다. 내가 공부할 시간이 없으면 현장에서 가이드와 도슨트의 도움을 반드시 받자.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자랑질을 잘하려면 공부는 필수다. 엄청난 사전 자료조사와 이를 엮을 수 있는 훈련이 병행되어야 그저 스쳐 지나갈 풍광을 가슴속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다. 세상과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렇게 의식적이 되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면 아무 생각 없이 돌아올 뿐이다. 피곤할 뿐이다. 사진 몇 장 건졌다고, 남들에게 '나 거기 가봤어'를 자랑질할 꺼리 하나 추가됐다고 자위하기에는 너무 짜치지 않은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One more thing이 1+1과 다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