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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4. 2020

5월, 햇살, 기억의 덩굴

'부처님 오신 날'과 '근로자의 날' 그리고 주말까지 겹쳐 나흘을 내리 쉬고 오늘은 '샌드위치데이'라 역시 쉬는 기업들도 상당히 많을 겁니다. 내일이 '어린이날' 공휴일이니 무려 엿세를 쉬는 사람도 있겠군요. 오랜만에 만나는 황금연휴임에도 황금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음이 이번 연휴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멀리 가자니 뭔가 좀 찝찝한 그런 기분이 뒷골을 당기는듯한 묘한 분위기 말입니다. 그럼에도 제주도로, 강원도 바닷가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습니다. 마스크 착용하고 개인위생에 철저히 주의하면 큰 무리가 없을듯해 그나마 안심하고 있는 연휴입니다.


시간의 화살이 계절을 관통해,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들어서 있습니다. 1년 중 이보다 더 좋은 날들은 없으리라는 시인들의 예찬이 펼쳐졌던 바로 그 5월입니다. 햇살 선선한 아침 출근길에 불현듯 그 화려했던 5월의 어느 한 해가 떠올랐습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던 1983년의 5월입니다.

기억은 뭘까요? 어디에 숨어 있다가 툭툭 반짝이며 떠오르는 것일까요? 뉴런의 시냅스들이 스파크 일으키듯 번쩍 거리면 브레인 한 곳에 녹아있던 옛 모습이 연속적으로 되살아나는 현상일까요? 기억의 현장에 부딪히면 놀라움이 소스라치게 다가옵니다. 기억은 경험의 일화가 쌓여있다 풀어지는 전자기 현상입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오감의 감각을 통해 지각으로 각인시켜놓은 경험의 행위는 기억의 단초가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집을 나서며 마주한 햇살의 눈 부심에 잠시 발길을 멈추었는데 기억의 번쩍임은 30년도 넘은 어느 한 날을 떠올립니다. 바로 대학 입학하고 첫 봄에 맞이했던 축제일입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대학시절의 축제는 말 그대로 축제였습니다. 젊음의 들뜸과 새로움이 설렘으로 교차하고 파트너가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쌍쌍파티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83년의 봄이긴 하지만 다행히 대학 첫해의 봄은 정권타도와 민주화가 폭발의 휴식기라 조용했던 탓도 있었습니다. 초록빛 화사한 대학 캠퍼스와 잔디밭 벤치 곳곳에 쳐놓은 온갖 이벤트 부스 들의 모습, 나름 넥타이에 양복들을 빼입은 청춘들의 모습, 젊은 아이디어들이 펼쳐지는 행사장의 소란함,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힘의 원천들 그런 모습들이 기억의 실타래를 타고 줄줄이 떠오릅니다.

어떤 연관 관계일까요? 이 아침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과 말입니다. 오늘과 비슷한 일과 나날이, 평생 수만 번 지나갔을 텐데 그중에 하나의 기억과 연결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아마 새로움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첫 대학생활이 주는 자유로움을 즐기는 날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겁니다.


빗방울 하나, 햇살 하나, 바람 한 점에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불러내는 마법 같은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못 뜰 만큼 강렬한 햇살 하나가 기억의 실타래 끝을 자극하고, 잊혔을 것만 같았던 그 먼 시간의 뒤안길을 따라 오늘 이 시간으로 불러옵니다.


과거는 재조합된 현재이자 재해석된 번역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기억의 회상은 항상 아련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초록빛 싱그러운 들판을 거닐어 보셨는지요. 따사한 햇살을 살랑살랑 피하게 해주는 초록의 그늘 밑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어봤는지요.


기억 속의 추억으로만 존재한다면 이제 기억을 현실로 만들어 보심이 어떠한지요? 계절의 여왕인 5월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아직 연휴의 끝자락인 내일의 휴일이 하루 더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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