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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1. 2023

단어는 감정을 입고 감동과 격앙의 런웨이를 걷는다

단어와 용어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단어와 용어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단어와 용어를 남발하면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같은 단어와 용어를 말해도 전혀 다른 뜻과 의미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고 있다. 들리는 것에 대한 오해는 그렇다고 처도 글과 문장으로 써놓아도 쓴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곡해를 한다. 말과 글이 화자와 필자를 떠나면 청자와 독자의 몫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 말과 문장에 있는 단어들의 나열에 대한 공동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용어가 공동체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구성원들로부터 공통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단어나 용어가 엮여서 구성된 문장을 해석하는데 차이가 있음은 다음 문제다. 기본적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인 단어와 용어 각각은 누구에게나 같은 뜻이고 같은 의미여야 한다.


단어들이 이어져 문장이 되면 의미를 갖게 된다. 개별 단어도 뜻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단어 자체만으로도 의사전달이 되겠지만 문장으로 이어놓으면 더 정확한 의미 전달이 가능해진다. 나의 의도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고 서로 소통이 가능해진다. 


개별단어로는 어려운 감정도 실을 수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감정을 전할 수 있겠지만 단어만으로는 무미건조한 사랑이 된다. '사랑'이 문장 속으로 들어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되면 주체와 대상이 명확히 드러나고 행위가 명료해진다.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임을 알게 되면 감정도 증폭된다. 문장의 힘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두꺼운 사전(辭典, dictionary)이 책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세대는 영어단어 사전이나 국어사전이 뭔지 모를지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사전의 유형이야 백과사전도 있고 다양할 테지만 "어휘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표기법, 발음, 어원, 의미, 용법을 설명한 책"이라는 의미의 사전은 인간 언어를 한 권의 책에 담은 표현의 보고다. 이 사전을 많이 여러 번 들춰본 사람들의 감성이 풍부해짐은 당연한 논리다.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으니 적재적소에 표현할 단어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문해력의 차이는 바로 사전을 얼마나 찾아보았느냐가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언어를 배우고 익힐 때 단어의 어원과 뜻, 개념을 명확히 심어주어야 제대로 된 시야를 갖게 된다. 모호함에서 명확함으로 가는 첫걸음을 잘 딛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런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듯하다. 대화 중에 목소리가 커지고 감정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에는 단어 선택을 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토론이 논쟁으로 가는 것은 토론이 누가 옳은지를 가려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옳은지를 가려내려는 공개 대화임을 망각한 때문이다. 거친 언어와 비방의 단어가 난무하는 토론장에서 훌륭한 합의가 나올 리 없고 정보가 교환될 리 없다. 

지난주 14일,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김예지 의원이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장애인 학대범죄 특례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연설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켜 화제가 된 바 있다. 김예지 의원은 "코이(관상용 비단잉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cm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cm까지 그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물고기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성장을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이 있습니다. 이런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돼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저 또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분들을 대변하는 공복으로서 모든 국민이 당당한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김예지 의원의 연설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 데에는, 고성과 막말이 오가던 국회 본회의장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기에 그렇다. 담당부처 장관을 윽박지르지 않고도, 막말로 무시하고 창피 주지 않고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연설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연설도 단어와 용어로 된 문장의 이어 짐이다. 히틀러나 괴벨스처럼 선동적 연설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고양시켜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꾼'이 있는가 하면, 달라이 라마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명연설과 강연을 통해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상황이 말을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말로 상황을 만들 때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용어를 쓸 것인지에 따라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썰렁하게 할 수 도 있고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 수 도 있다. 말로 흥할 수 도 있고 말로 망하기도 한다. 말로 흥하기보다는 말로 망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본다. 얄팍한 말의 술수에 빠져들면 의미의 늪에 갇혀 버린다. 


그래서 명심보감 존심 편에서도"염염요여임전일(念念要如臨戰日)하고 심심상사과교시(心心常似過橋時) ; 생각은 전쟁에 임하는 날 같이 해야 하고 마음은 항상 다리를 건널 때와 같이 하라"라고 했다. 단어 하나 용어 하나 끌고 오는 생각과 마음에도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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