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un 23. 2023

전쟁이 끝난 게 아니고 멈추고 있을 뿐

이번주 일요일이면 '6.25 전쟁'발발 73주년이 된다.


그런데 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 사건을 네이밍 하는 단어 자체가 여러 개가 사용되고 있다. '6.25 전쟁' '한국전쟁' 등이 있고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50-60대 세대에게는 '6.25 동란' '6.25 사변'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사변(事變)은 '선전포고도 없이 국가 간에 벌어지는 무력충돌'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는 용어다. 동란(動亂)은 '폭동, 반란, 전쟁 따위가 일어나 세상이 몹시 어지러워짐'을 뜻한다. 전쟁(戰爭)은 '나라나 단체들 사이에서 무력을 써서 행하는 싸움"이다.


용어를 규정짓는 주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상대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도 변해왔음을 눈치챌 수 있다. 역사는 상황이 만들고 쓰는 용어의 집합이다. 용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그 해석에 따라 개념이 달라진다.


한국전쟁을 부르는 용어가 참전했던 나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불려짐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칭한다. 임진왜란을 '항왜원조전쟁(抗倭援朝戰爭)'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남침을 강행해 사건을 일으킨 북한에서는 한국전쟁을 '조선전쟁'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The Forgotten War' 'The Unknow War'라고도 부른다. 2차 세계대전과 미국이 패배하고 물러난 베트남 전쟁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라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어떻게 바라볼지가 결정되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6.25 전쟁을 명명하는 용어가 여러 개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을 규정하는데 딱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도 사변이나 동란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게 달라질 수 있다. 국력이 신장되면서 어려웠던 과거의 파노라마를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로 녹여내 사건을 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힌 게 현재의 용어 선택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다만 잠시 싸움을 멈추고 있을 뿐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중지되었으니 3년 1개월에 걸친 인페르노(inferno)는 휴전과 정전이라는 용어에 묻혀 인지 감각까지도 무디게 흩트려놓았다.


휴전(休戰)은 '전쟁 중 얼마 동안 싸움을 멈춘 상태'이고 정전(停戰)은 '전쟁 중인 나라들이 서로의 합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 상태'를 말한다. 둘 다, 싸우는 중에 잠시 멈추거나 중단한 상태를 칭하는 용어다. 잠시 멈추었으니 언제든 또 싸울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단어다.


이 긴장을 70년을 유지해 왔다. 세대가 두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쟁을 멈추고 있는 상태라는 위기감은 점점 시들해져가고 있다. 6.25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이젠 가뭄에 콩나물 나듯 남아있는 상태다. 이젠 생생한 증언이 아닌 저장된 영상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인류에게 전쟁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TV 화면으로 생중계하듯 지켜보고 있기도 하다. 우리 부모 세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직접 겪어 치를 떨어야 했던 전쟁상황이 어느덧 강 건너 불구경이 되고 옆 집 싸움의 흥밋거리로 전락해가고 있다.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고 그것도 바로 옆집도 아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평화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잠시 중단하고 있는 전쟁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전쟁은 반드시 힘이 있다고 자부하거나 착각하는 놈이 벌이게 되어 있다. 힘이 없는 놈은 절대 센 놈에게 대들 수 없다. 대들어봐야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대들 때는 딱 한 번뿐이다. 코너에 몰렸을 때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순간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역사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대들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니 대들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모습이다. 70년이 지나도록 전쟁이 재발되지 않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70년 전 영토를 지켜낸 참전용사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 황폐화된 나라에 벽돌을 쌓고 건물을 짓고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나선 앞 선 세대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덕분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그냥 공기처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쟁취를 통해 그 안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더욱 숭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 쓰여있는 문구가 주는 묵직함이 가슴을 누른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와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문구다.


그렇게 자유는 지켜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잠시 쉬고 있는 전쟁의 간빙기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힘이 있어야 내가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단어는 감정을 입고 감동과 격앙의 런웨이를 걷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