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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5. 2023

지식은 가장 불평등하지만 가장 공정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것이 무엇일까? 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돈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것이 있다. 정보와 지식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가장 불평등하지만 가장 공정하기도 하다. 대충 아는 것과 겉만 아는 것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 언제든 인출해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꺼내 놓을 수 있나?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있는가 말이다.


막연하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대학 졸업하고 덮어버린 책 속의 정보들은 아미 색조차 바래버린 지 오래이고 그나마 늦깎이로 지난해에 졸업한 대학원 과정에 들춰본 논문들의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비슷할 거다. 승진시험 보느라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족보가 책상서랍 한구석에 놓여있는 게 전부일게 틀림없다. 그렇게 매달 실적에 쫓기고 성과에 휘둘려가느라 무엇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버텨온 세월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을 거다. 업무지식을 떠나 다른 지식을 머리에 담을 시간조차 없고 담고 있을 필요조차 못 느끼고 살아온 시간일 거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저녁 식사모임에 나가 대화를 하다 보면 겉핥기식의 대화가 끊임없이 주제를 바꾼다. 이 얘기했다가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주제로 갔다가, 또 다른 화제로 연실 넘나 든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무슨 얘기들을 했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물론 신변 잡담과 정치인 씹기, 연예인 사생활 캐기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통로임에는 분명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대화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최고다. "그래 너의 말이 맞아" "딱 그래" "어쩜 그렇게 나와 똑같니 " "어머 어머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데 죽었어? 살았어?" "아! 빙신들! 걔네들은 너처럼 그렇게 똑 부러지게 못한데. 담부터는 그 새끼들 만나지도 마라 얘"


사실 소통은 아무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것이 최고다. 그저 꿍짝을 맞춰주고 잘했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최고의 대화법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소통이 시간 죽이기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하나쯤은 대화 중에 얻어걸리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다못해 시세가 오르는 주식 종목 하나라도 추천을 받을 수 있고 최신 유행하는 옷 스타일이 뭔지, 지금 뉴욕에서 제일 잘 팔리고 인기 좋은 햄버거로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DuMont 버거를 추천받던지, 하다못해 서울에도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블루보틀 프랜차이즈 카페 중에서 삼청동점이 제일 좋다는 정보라도 주워 들어야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쥐뿔도 모르면 완장을 채워줘도 못한다. 왜? 안다는 것은 가장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은 위계(hierarchy)가 분명하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알아야 한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찾고 알아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돈에 욕심을 내면 수전노라고 욕을 먹기도 하겠지만 지식을 쌓은데 욕심을 내면 적어도 욕을 먹지는 않는다.


일단은 꺼내 놓을 수 있는 지식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뭘 알아야 꺼내놓을 텐데 쌓여있지 않으면 내놓을 수 조차 없다. 머릿속 지식 창고는 병렬연결이 되어 통합이 되고 통섭이 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으로도 이어진다. 지식 창고가 비어있거나 듬성듬성 있으면 연결하는데도 문제가 생긴다. 한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한다. 아는 게 거기까지 이기에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식의 창고를 채울 것인가? 공부에 끝이 어디 있을까만은 꼭대기에 근접하는 지름길은 있다. 바로 먼저 공부했던 선행자를 찾고 만나는 일이다. 나보다 먼저 고민했고 나보다 먼저 길을 나섰던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행적을 엿듣고 엿보게 되면 최단 거리로 그 뒤를 쫓을 수 있다. 


내가 알고 싶은 분야의 대가를 찾아라. 포탈을 뒤지고 유튜브를 찾으면 관련분야에서 콧방귀 좀 뀐다는 전문가 및 교수들을 검출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성과 자료나 책을 읽어보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 10개 정도는 발췌해 놓는다. 그리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한다. 이메일로 관심 표명을 하는 정도 가지고는 안된다. 전문가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 간단하다. "선생님께서 지난달 출간하신 책 125쪽에 있는 문장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조언을 듣고자 전화를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공부하시면서 영감을 얻으신 책 3권만 추천해 주시면 제가 삶의 지표로 삼겠습니다"라고 여쭙는다. 자기의 책이나 강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직접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는데 마다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렇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 거인을 따라가기만 해도 세상의 지평이 넓어지고 관점이 달라지며 지식창고의 질이 달라진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는 머릿속 지식의 서랍을 다양화하는 지표임에 틀림없다. 알고 가면 보이고 보고 나면 가슴이 뛴다. 다시 하고 싶어지고 알고 싶어 진다. 새로움을 만난다는 것은 모르는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동해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보상을 받으려 한다. 두려움을 보상받으려는 착각의 시작일 수 있으나 결과는 새로움에 익숙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명백한 것이다. 모르던지 알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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