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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6. 2023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안다'는 것과 '이해하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만의 언어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분별하여 해석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어적 해석이고 자기만의 판단이다.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를 수 도 있고 나보다 더 많이 알 수 도 있다. 그 수준의 차이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드러낼 수 있다. 묻지 않으면 그 차이의 경계를 전혀 알아챌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로 언어와 문자를 개발했는데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장(場)에 갇혀버렸다. 언어가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언어다. 이 언어를 형상화하여 시각화한 것이 문자이고 글이다. 안다고 하고 이해한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언어와 글의 순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문맥이 맞아야 한다. 주어와 서술어가 분명해야 하고 이 흐름의 체계가 일목요연해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언어적, 글적 서술관계가 문맥을 만들고 의미를 형성하여 '안다'는 정점에 다다른다. 말의 순서가 맞지 않고 문맥이 맞지 않아 횡설수설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얼마나 우스운가? 입으로 지껄이는 말 한마다와 글이라고 끄적이는 문장으로 모든 걸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오만이 말이다.


그래서 일찍이 불교 선종에서도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했다.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보편적 명제의 형태로 정언을 세우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과는 별도로 특수하게 전수된 것이 있음을 뜻한다. "문자에 따라 의미를 해석하지 마라, 진실은 글자에 묶여있지 않다"라는 가르침이다.


정말 그러하다. 인간은 인간의 언어로서만 세상을 바라본다. 생각이라는 것이 언어에서 출발하기에 당연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기술하지 못하는 현상과 사건들도 있다는 얘기다. 아니 들여다보면 인간이 표현하는 세상은 너무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광활한 초록의 지평선을 바라보거나 수억 년의 시간이 만든 그랜드캐넌의 장중한 풍광과 마주하면 어떤 표현으로 그 모습과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멋있다' '굉장한데' '이럴 수가' '신이 만든 작품이야" 더 끌어들일 단어도 많겠지만 아무리 거창한 형용사들을 끌어온들 그 대자연의 모습을 인간의 언어로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다. 그것이 인간의 언어가 갖고 있는 한계다. 대자연의 풍광은 그저 스틸사진 찍히듯 머릿속에 각인되고 눈에 담길 뿐이다. 그 어떤 표현으로 말을 하거나 글로 써도 타인에게 그 느낌을 오롯이 전달할 수 없다. 가서 봐야 하고 가서 느껴야 한다. 그 현장에 내가 서 있어봐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연현상을 숫자와 방정식을 통해 기술해 온 물리학과 자연과학의 수많은 고전역학 법칙과 원리들은 그나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고 밝혀낸 빛나는 업적들이다. 20세기부터 인류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오면 벌써 인간의 언어를 떠난 세상이다.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 현상은 인간의 직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의 언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이 있는데 검증과 실험을 통한 결괏값은 존재하기에 믿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지구가 자전도 하고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을까? 해가 떴다가 지는 현상을 볼 때 인간의 직관은 분명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맞는데 말이다. 이 인간적 직관에 의심을 품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은 1500년 경에나 등장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조차도 천체망원경도 없던 시절이라 관측결과에 대한 주장이 아니었고 철학적 직관에 의한 사유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가 더욱 위대한 것이다. 현상에 의심을 품고 끝없이 질문을 했기에 해답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 코페르니쿠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태양이 돌고 하늘이 도는 게 맞았다. 이 직관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학교에서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다고 배우지 않았다면 우리에겐 여전히 하늘이 돌고 있는 게 맞을게 틀림없다.


지구가 돌던지 하늘이 돌던지, 일개 개인에게는 하나도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일상을 버텨내야 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며 더우면 샤워를 하고 시원한 얼음조각이라도 입에 넣고 만족해야 하고 졸리면 자야 한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자전을 할 때 속도는 무려 시속 1,670km다. 또한 지구가 1년에 한 바퀴씩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을 할 때 속도는 시속 108,000km나 된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또한 우리 은하 내에서 시속 828,000km 속도로 은하수 중심 주위를 돌고 있다. 이 엄청난 속도감을 과학이 증명해 냈음에도 나는 지금 전혀 이 속도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편안하게 쉬고 있다. 고속도로 제한속도 100km 범위 내에서 생활해 온 직관으로는 감히 상상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속도위반의 과속 딱지를 걱정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직관으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문제다. 우주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그저 그 우주 속에 그 지구 속에 그 나라 그 동네 그 집에 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알고 싶고 궁금하여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돌고 있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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