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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7. 2023

가던 길만 가고 가는 곳만 간다

서울에서 40년을 살면서도 안 가본 곳이 엄청 많습니다. 남산에 몇 번이나 올라가 보셨나요? 저는 남산을 두번밖에 못 올라가봤습니다. 명동에는 몇 차례가 가보셨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동네, 어떤 맛집 식당을 이야기하면 정말 금시초문이 곳이 수두룩합니다. 아직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도 못가봤네요.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도 못가봤는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ㅠㅠ 심지어 고궁이 다섯 개나 있는데 그중에 경복궁과 덕수궁은 몇 번이나 들어가 보셨나요? 궁이 다섯 개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는 길만 갑니다. 갔던 곳만 갑니다. 식당도 가 본 식당만 주로 갑니다. 개인별 이동동선을 보면 거의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움직이는 현상을 눈치채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지워지지 않은 동물적 본능이지 않나 싶습니다. 동물들은 가던 길만 갑니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가면 개들은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합니다. 개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포유동물들이 그렇습니다. 영역표시는 자기가 와봤다는 흔적입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자기 권리에 대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바로 안심(安心)입니다. 한번 와 봤다는 것은 심리적 편안함을 줍니다. 편안함은 생존에 대한 에너지를 적게 쓰게 만듭니다.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갔던 곳, 갔던 길만 갑니다.


저는 고향이 강원도 원주입니다. 유명한 치악산이 있습니다. 대학을 오면서 서울로 올라왔으니 피 끓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원주에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은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ㅠㅠ 등산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야 공부하느라 그렇다고 쳐도, 사회에 나와서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등 웬만한 국립공원의 산은 다 다녔습니다. 서울 경기 인근의 산이라는 산은 모두 올라가 본 경력 아닌 경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치악산 정상에는 발을 한 번도 디뎌보지 못했습니다. 최고로 높이 올라가 본 치악산은 고등학교 때 소풍으로 갔던 중간 능선자락인 고둔치까지였습니다. 고향의 유명한 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연이 닿질 않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가 봅니다. 나의 관심, 나의 인연이 닿지 않으면 내 옆의 사람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발길조차 내딛지 못합니다. 가끔은 고개를 곶추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려 그동안 못 봤던 것, 봤으되 미쳐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래야 가까운 곳에도 정말 좋은 것들이 산재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연은 그냥 다가오고 지나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인연을 알아채고 잡을 때를 인연이라고 합니다. 인지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인연은 인연이라 하지 않습니다. 인연은 내가 만들어가는 겁니다. 내가 관심 갖고 내가 먼저 나서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들어주어야 합니다. 사람과의 인연도 그러하고 자연과의 인연도 마친 가지입니다. 내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만나야 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자연도 내게 오지 않습니다.


만나자고 하면 만나봐야 하고 가자고 하면 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알게 되는 현상입니다. 점점 전화나 문자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소식도 하나 둘 적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영역을 축소해 가는 심리적 기제의 작동입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계속 영역의 밀도를 단단히 봉쇄해 나갑니다. 그래서 갔던 곳만 가고 만나던 사람만 만납니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예전 추억만을 떠올립니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 영역을 축소해 가려는 본능과 의식적으로 맞서야 합니다. 새로움이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멀리 해외로 나가고 유명 리조트를 찾아가는 것만이 새로움은 아닙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옆 동 앞에 조성된 정원으로라도 가보는 겁니다. 매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의 현관과 지하주차장만 오르내리느라 옆에 있는 동의 정원에는 어떤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지조차 관심 가져본 적이 없을 겁니다. 주황색 능소화 흐드러지고, 나리꽃향기 잔잔히 코끝을 적시고, 작은 물웅덩이에 심어진 수련꽃이 애잔해 보이고, 옆 동 앞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있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매일 똑같은 길에서 벗어나 오늘은 다른 길로 돌아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봅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겁니다. 그래도 보고자 해야 보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길만 돌아가면 다리만 피곤해집니다.


관심의 확장은 '영역의 확장'입니다. 넓어짐은 그만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가까운 주변에 아직 안 가본 곳이 있는지, 소식이 궁금했던 친구가 있는지 한 번쯤 발길을 옮겨보고 전화라도 걸어볼 일입니다. 그렇게 내가 가보고 내가 다가가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이고 사람 냄새나는 소주잔이 보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일, 바로 관심이고 사랑입니다. 제가 그대에게 보이는 관심과 사랑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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