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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7. 2020

햇살 산책


맑고 밝은 햇살이 내리비치는 출근길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요? 인간의 언어로 묘사하기보다는 그냥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면 그것이 최고의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실 날씨와 계절에 선을 그어놓고 이 시간부터는 맑아야 되고 이 시간부터는 비가 내려야 돼 라고 하는 법칙과 경계는 없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보니 반복되는 순간마다 이정표처럼 우리는 "계절이다"와 같은 표식을 붙여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공유되고 통용되어 용어가 되고 개념이 되고 현상의 지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날씨 현상은 그렇게 인간의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침 6시 15분. 해가 길어져 아침을 맞는 태양도 일찍 동녘 하늘에 올라서 있습니다. 그 덕에 온갖 만물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난밤에도 그 어제에도 또 그전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도 저 태양으로 인하여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니 모습은 상대적인 것이라 항상 그 현존이 모습일 겁니다. 어둠에 있었을 때의 모습, 밝음 아래 있었을 때의 모습, 어느 것에 좋고 나쁨의 경중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밝은 햇살은 햇빛 찬란한 그대로, 희미한 달빛은 그 은은함 그대로, 자연은 원래 그런 것이었으며 그 현재는 가장 위대한 현상의 표현입니다.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고대 그리스에 살던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좋은 삶(Eudaimonia)'을 목표로 하기위해 "medan agan(지나치거나 치우치지 마라)"이라는 중용의 이치를 설파했습니다. 동양에서의 중용은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맞히기 위한 긴장된 노력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려운 정의이긴 하지만 이미 2,500년 전부터 인간은 동서양 어느 지역에 살던지, 똑같이 자연의 법칙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해 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과학이 상상의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해 나가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발전해 왔기에 인간의 논리적 상상력은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을 집중력과 주의력으로, 쏟아지는 햇살 하나하나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사색의 산책을 하고 싶어 녹색 찬연한 덕수궁 돌담길을 돌고 돌아 출근을 한 아침입니다.


5월은 찬란한 햇살 속에 숨어있던 색채의 에너지를 맘껏 내뿜는 자연의 축복을 보여주는 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축복은 받아내는 자가 느끼고 누려야 가능한 혜택입니다. 축복과 경이가 내 주변에 널려 있음에도 그 혜택을 느끼지 못하면 축복은 축복이 아닙니다.


잠시 멈춰 서서 내리쬐는 햇살 하나 손바닥으로 받아내도 그 햇살의 축복은 손바닥을 타고 팔을 거쳐 브레인으로 전달되고 다시 운동신경을 거쳐 눈으로 손바닥으로 다시 내려옵니다. 온몸이 전율하는 햇빛의 축복으로 자연을 향해 팔을 흔들어 볼 일입니다.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전해볼 일입니다. 축복받는 5월의 아침은 그렇게 가슴속에 환희로 되살아 납니다.


오롯이 그대가 느끼고 감동하고 표현할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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