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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8. 2020

엄마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미 지나 의미가 없는 날짜에도 빨간 표시로 어린이날이 있고, 빨간 표시는 아니지만 날짜 밑에 글자들이 쓰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근로자의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이 있고 절기를 표시한 입하, 소만 도 있습니다. 표시는 있는데 공휴일 지정이 안된 날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비중을 안 둔다는 반증일 겁니다.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럼에도 어떤 날을 표시하고 기념일을 정했다는 것은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의미 있는 날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인쇄된 글자가 아니더라도 각 개인마다 의미를 부여해야 할 날에는 '어머니 생신' '결혼기념일'이라고 손수 써넣은 날들도 있는 걸 보면, 표기는 기억의 회로를 작동시키는 트리거이자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임에 틀림없습니다. 브레인의 외부 확장이 달력 한 장에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출근길 전철에서 안내방송으로 오늘이 '어버이날'임을 새삼 일깨워주더군요. 왕십리 환승역으로 열차가 진입할 때 나오는 안내방송 전에 '어머님 은혜' 노래를 틀어 줍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 이어폰 너머로 '어머님 은혜'노래가 들려와 잠시 이어폰을 뺍니다. 저 만 이어폰을 뺀 것이 아니더군요. 앞좌석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도 이어폰을 빼고 노래를 들으며 전철 천장을 망연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분명 어머니에 대한 사연과 추억이 남다른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은혜" 노래에 대한 사연이라고 하면 대부분 남자들은 군대 훈련소 시절, 고단했던 유격훈련이 끝나거나 화생방 훈련 가스로 눈물 콧물 쏟아질 때 억지로 부르던 기억으로 오버랩됩니다. 그 아련했던 시절 이후로 그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부모님 생신 때는 케이크 놓고 생일 축하노래를 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어버이날'에는 꽃을 사들고 전해줄 대상이 없는 첫해가 돼버렸습니다. 지난해 어머니께서 자연으로 회귀하셨기 때문입니다. 눈에 실물로 보이지 않아 안 계신 듯 하지만 온 대지에, 온 대기에 분자로 원자로 새 생명의 힘으로 다시 환생하셨으니 온 천하에 계십니다. 항상 곁에 계신다는 안도와 위안으로 힘을 얻습니다.


아버님은 1992년도에 돌아가셨으니 돌아가신 지 벌써 2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타임머신처럼 시간의 공간을 뛰어넘어 생생한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지난해 기억의 공간으로 떠나셔서 천애의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난해까지 집 앞에 있는 요양원에 7년이나 의탁하고 계셨습니다. 28년생이셨으니 올해 93세셨을텐테 마침 이틀 전이 어머님 생신이기도 했습니다. 요양원 침대에 걸터앉으셔서 아들이 언제나 오나 항상 출입구 쪽만 바라보고 계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찾아가면 "왜 왔어? 바쁜데" "밥은 먹었어?" "애들은 학교 갔어?"물어보셨습니다. 치매로 정신줄이 혼미함에도 아들을 보면 거짓말하듯 몇 마디는 대화가 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신줄이 얇아지셔서 혼란스럽고 몸도 온전치 않아 걷는 것조차 부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형상이었던 어머니였습니다. 약기운으로 버텨내시고 계셨지만, 뵐 때마다 "죽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달고 계셨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알아보시고 손잡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큰 힘이자 위안이었습니다. 자연의 원소들로 흩어지는 날이 올지라도 천천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식 된 도리이고 그 도리에 또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그날까지 큰 고통과 두려움 없이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지난해 겨울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저 일상이었던 '엄마'라는 단어가 이젠 가끔 다가서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애잔해지는 용어가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엄마가 말입니다.


점점 아련해지는 단어가 늘어갈 나이인가요? 감각에 느낌을 부여하여 듣고 보는 지각의 지배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망각이 당연한 진화의 산물이라, 접하는 모든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브레인의 용량이 감당을 못하게 됩니다. 

허 허 웃고 맙니다만 그 웃음 속에 희로애락이 함께 있습니다.


그것이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현상이자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에 가장 충실할 때입니다. 전화 한번 더 하고 한번 더 찾아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하고 표현해 옆에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산다는 숙명 속에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더 사랑한다고 전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계실 대지를 향해,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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