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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1. 2020

스트레스 강도를 줄이는 법

인간들에게 긴장과 스트레스는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강도의 차이와 본인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다름에 따라 영향의 여파가 다르게 나타나고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수억 년 약육강식의 생존 본능에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어서 긴장이 없으면 약자의 나약함이 도드라져 생존확률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대륙과 동떨어진 생태계에 천적이 없이 커온 키위처럼 날개가 퇴화되어 버린 새가 되기도 합니다. 바로 긴장이 없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훌륭한 기능의 날개조차도 쓸모없는 용도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굳이 날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기에 날지 않았고, 날아 달아나지 않아도 생명을 위협할 존재가 없으니 게을러졌습니다.


그러나 키위는 야행성 조류입니다. 낮에는 굴에서 생활하고 시력이 약간 퇴화되어 부리에 있는 후각 기능에 의지해 먹이활동을 합니다. 키위가 날개를 버렸던 이유가 바로 이렇게 밤의 생태계에 적응한 결과입니다. 밤에 먹이를 찾기 위해서는 하늘을 날아봐야 보이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땅에 코를 박고 냄새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사냥방법입니다. 진화는 항상 비교우위에 있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데 적합하면 열등하지만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인간이 데리고 간 고양이들이 천적으로 나타나면서 키위들은 멸종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인위적으로 인간들이 보호하지 않으면 지구 상에서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겁니다. 생존 환경이 바뀌면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고양이를 피해 더 빨리 달리는 다리의 근육을 키우거나 아니면 태곳적 본능인 날갯짓을 다시 퍼덕여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남는 비율이 멸종하는 비율보다 높아질 때에야 비로소 생존력을 갖게 됩니다. 그전에 종의 멸종이 먼저 일어나겠지만 말입니다.


키위처럼 긴장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져 갔고 긴장하며 삶을 영위해온 생명체만이 지금 지구 상에 번성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사는 우리들은 수많은 스트레스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그 이면에는 경쟁이라는 긴장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도와주고 의지한다고 하지만 그 끈들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잘 엮어내어 자기편으로 만드느냐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삶의 근본은 역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우선이라고, 선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생존을 미화시킨 의미일 겁니다. 일단 내가 살아남고 봐야 나머지 모든 것이 선이고 행복이 됩니다. 생존경쟁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업이자 모든 생명의 본질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직장의 구성원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그 주변에 있는 사물들과의 문제들은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기에 내가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가벼운 스트레스는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는 신념으로 주변에서 오는 현상들을 관조해 봅니다.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무런 스트레스가 아니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현상 중의 하나임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 과정 중에 스트레스의 강도를 조절해내는 내성이 생기고 독을 약으로 삼을 수 있는 생명력도 얻게 됩니다. 그대에게 스쳐 지나가는 주변의 스트레스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먼지와 같은 것이며 시간의 초침 위에 놓인 허상입니다. 초침이 한 눈 끔 옮겨가면 떨어져 나갈 낙엽입니다. 이제 태양이 떠올라, 생명 있는 모든 것에 활력을 보태는 이 아침, 그대의 힘찬 기지개와 목청 높인 활기의 외마디가 새로운 밝음과 활력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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