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y 13. 2020

일상은 진득한 땀내나는 현장의 모음이다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일상이라는 단어에는, 루틴 한 일들의 연속이어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들어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하니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으니 편안합니다. 그저 평소 하던  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일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일상이었던 모양입니다.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일상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쉴 때 무엇을 하는지 보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지, 음악을 듣는지, 운동을 하는지, 잠을 자는지, TV를 보는지 등등, 그 사람의 쉬는 일상을 들여다보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사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일상은 아무것도 아닌듯한 편안함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삶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어떤 것이 먼저 일리 없고 혼돈과 섞여 있음이 본질이지만 순서를 정하고 우선순위를 따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인간의 속성이 일상 속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계속 일상에 매몰되어 다른 아이디어가 접목되지 못하는 한계를 쉼이라는 일상 탈출을 통해 새로움과 만나게 하는 사이클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끌어들여 더 나은 상태로 진일보하는 것. 바로 생존의 본질을 강하게 하는 일상 탈출입니다. 1973년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그네노베티가 매사추세츠주 뉴튼에 사는 한 그룹의 남자들이 자신들의 직장을 어떻게 찾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약한 인연의 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연구가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거나 새로운 정보나 아이디어를 얻는 데는 주변의 절친보다 '약한 인연'을 지난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친한 친구와 지인들은 행동반경이 비슷한 반면 약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행동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어디에 어떻게 적응시키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음도 알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의 일상은 글을 통해 삶의 실타래를 계속 얽혀내는 일입니다. 뉴런의 정보 교환처럼, 살아가는 모든 것은 상호작용으로 드러나고 표현됩니다. 자연과학에서 연속의 개념은 양자역학을 통해 산산이 부서졌지만 우리의 인지 공간에서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삶조차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연속이길 바라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일상일 것입니다. 일상도 "영원한 것은 없고 연속적인 것이 없음"이 본질입니다.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이기에 쉼과의 거리가 제일 먼 요일이기도 한 오늘이 일상입니다. 쉼이 없는 일상이기에 단절이라는 단어가 모든 걸 끊어버리고 새로운 것과 마주할 거 같지만 그 단절이라는 의미조차도 연속의 근간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모든 걸 녹여내 붉은 쇳물처럼 흘러나오면 그것은 곧 융합입니다. 좋은 것, 나쁜 것, 모든 것을 함께 버무려 강건한 쇠의 삶으로 다시 만들어 냅니다. 일상은 그 연속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것은 이 신록의 계절에, 화려함을 뒤로한 것 같지만 초록의 그늘에 삶을 숨긴 오방의 빛깔이 섞여있음과 같습니다. 흰색과 노란색이 지고 이젠 붉은 덩굴장미가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산 중턱에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흰색의 아카시아 꽃은 이제 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색의 비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고 작아지곤 하지만 완전히 지배하는 색은 없습니다.


자연은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초록이 완연한 색 천지에서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한 색의 진화입니다.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환경에 맞게 존재를 보이는 자연은 이미 그 오묘함을 진화의 우연함 속에 포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러내고 눈에 뜨여야 살아남는 꽃의 세계는 감추고 숨어야 살아남는 동물의 생존과는 또 다른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식물과 동물은 순환의 고리를 공유하는 존재라는 생명의 공통점을 품고 있습니다.

새로운 선택으로 다수결의 민주주의를 따라가는 인간 공동체의 속성을 들여다봐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공동체 구성원 어느 누구도 그 공동체가 망하길 원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주장, 주의가 제일인양 외치고 다른 생각과 행동은 곧 적이라는 이분법적 확증편향에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떤 결말에 도달하면 힘의 추에 바로 꼬리를 내리거나 전향하거나 모래에 물 스며들듯이 조용해집니다. 생존본능입니다. 인간 인식의 사이클은 아직 자연에서 한참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민족의 대통합이라는 새로운 결론을 만들어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좋든 실든 같이 살 수밖에 없고 같이 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견이 차이가 아니고, 외침이 높낮이가 아닌 세상이 되길 바라며

엮고 섞고 녹여내 진득한 삶의 향연을 펼쳐내야겠습니다. 일탈과 일상이 한 몸이었던 것처럼 송골송골 땀내 나는 그 에너지로 숨차게 호흡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스 강도를 줄이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