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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4. 2020

화분, 물 버리는 하수구가 아니다

출근하면 매일 같이 반복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침 글 쓰는 이외의 것 말입니다. 책상 위의 컴퓨터를 부팅하고 사무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일입니다. 그나마 매일 물 주던 화분이 몇 개 줄어들긴 했습니다. 매년 식목일에 '꽃씨 나눠주기 행사'로 분양하던 화분 키트가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어 창가에 놓인 화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재배 키트에 씨앗을 심은 탓에 매일 조금씩 물을 줘야 하는 '가꾸는 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었는데 루틴 한 일과를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작은 화분이 없는 덕에, 사무실에 놓인 큰 화분들한테 신경을 쓰게 됨은 Collateral Love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안도감을 대신합니다.


사실 태양과 비, 바람이 있는 자연환경이 아닌 실내에서 화분에 꽃이나 식물을 가꾸고 키운다는 것은 보통 정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화분이었던지 집에 들어올 때는 좋은 일의 대명사이자 역할로 왔습니다. 집들이를 했던지, 생일 축하로 받았던지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 화려한 역할은 화무십일홍이 대부분입니다. 꽃이 지고 난 화분은 그저 귀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의 신세가 되어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나마 가끔 컵에 남은 물을 버리는 하구수의 역할을 하면 다행입니다.(ㅠ.ㅠ 너무 심한 표현을 ^^;;; 그러나 맞는다는)

화분에 심어진 생명들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았고 인위적으로 심긴 것이기에 잘 자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함은 심은 사람의 몫이자 받은 사람이 거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연의 역할 중 하나인 햇빛을 보게 하고 에너지를 만들 흙의 용해를 도와줄 물을 공급해주는 것. 바로 '실내의 자연' 역할을 누군가가 해주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이어가게 할 책무 말입니다. 특히 화분에 '물 주는 역할'이 제일 중요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지붕이 씌워진 실내에 있는 화분 속 식물들이야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하지만 자연 속에 있는 식물들은 스스로 물을 찾아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대지에 내리는 비는 잎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통해 흡수됩니다. 비가 내리자마자 곧바로 식물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는 바로 대지를 용해시켜 대지에 스며들어있는 여러 분자들을 풀어놓아 이온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지요. 뿌리는 바로 그 용해된 성분을 빨아들이고 삼투압을 통해 줄기와 잎으로 보내게 됩니다. 비는 바로 모든 걸 풀어내게 하고 흩뜨러 지게 하는 용매였던 것입니다.


비는 용매이자 모든 것입니다. 생명의 시작이 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바로 탄생의 원천입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물의 흔적을 찾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물론 액체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질소 액체가 있고 산소 액체도 있습니다. 압력에 따라 수소도 액체가 되며 헬륨도 액체가 됩니다. 바로 태양입니다. 근원을 추적하면 한 곳에 모입니다. 생명의 근원을 따라가면 바로 물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저 물, 비, 하천, 강, 바다 하면 감성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감성에 과학을 더하면 본연의 모습이 들여다보입니다.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에서부터 무생물 암석의 거친 표면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뉴런에 모여있던 정보가 광물인 실리콘으로 들어가 반도체가 되어 외부로 저장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공진화 현상의 하나입니다. "화분에 물 주기"가 바로 진화의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경이의 현장을 보고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 벅찬 일입니다.


지금 화분에 담겨있는 흙 한 줌이 사실 10억 년 이상된 이 땅의 암석들이 모래가 되고 실트가 되고 점토가 된 결과입니다. 흙 한 줌에도 10억 년의 시간이 숨 쉬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 모든 것이 자연의 공진화가 빚어내는 조화 속에 순환되고 있습니다. 저 돌멩이 속의 철(Fe) 분자가 내 피의 헤모글로빈 속에 녹아있고 숨을 들이쉬어 들어오는 공기 속의 산소는 가로수 잎에서 나왔습니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점조차 우리의 생명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순간을 값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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