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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0. 2023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사회

한국 사회는 사람을 죽이는 사회지, 사람을 키우는 사회는 아닌 듯하다. 특히 정치판으로 가면 더욱 극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튀는 놈은 가차 없이 매장을 시킨다. 이런 풍토를 알기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인물이 드물다. 실력이 있고 재주가 있어도 자신의 잠재력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아니 감히 드러낼 수 없다.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 어떻게든 꼬투리 잡히고 흠집 잡혀 파렴치한이 되어버린다. 협잡만이 살아남는 더러운 판으로 전락한다. 잔머리꾼들만 기세등등하다.


이 더러운 판을 민주주의 꽃으로 보기도 한다. 서로 논쟁하고 헐뜯을 수 있는 자유를 통해 견제하고 감시함으로써 일방적인 독주를 막고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치졸한 전략에 대한 합리화로 보일 뿐이다.


정치판은 공개된 싸움판이다. 다만 무기가 총과 칼이 아닌 말을 통한 논리와 정당성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동의 룰이 적용되는 옥타곤이다. 물론 이 싸움판의 바탕은 국민의 삶을 지키고 좀 더 복되게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장통 시장잡배의 싸움에서야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쌍욕이 난무하고 의자와 집기들이 날아다니고 심지어 사시미칼이 위협의 도구로 번쩍여도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다. 그 세계는 그런 놈들의 집합이니까 개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정치판의 싸움이 이와 같을 수는 없다. 싸움의 결과가 전체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움에도 격이 있어야 한다. "싸움에서는 이기는 놈이 최선이지 뭔 소리?"라고 할지 모른다. 당연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 싸움의 첫 번째 원칙이다. 지는 싸움은 아예 하지도 않고 걸지도 않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싸움은 상대를 죽이고 깔아뭉개는 게임이 아니다. 싸우는 모습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는 퍼포먼스다. 상대를 제압해서 이기는 일반 싸움이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이 맞지만 정치판의 싸움은 관객인 국민의 시선이 더 중요한 기묘한 싸움이다. 정치판에서는 상대 진영을 눌렀다고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는 군집사회의 모든 인간사가 녹아있는 정점의 행위다. 개별적, 독자적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문명과 사회를 만들어내고 가능케 하는 원천이자 종합예술이다. 이는 진화생물학적으로 포유동물들의 본성과도 연결된다. 바로 위계와 서열을 만드는 일이다. 군집을 이루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개체가 2개 이상만 되어도 위계를 가린다. 힘이 위계를 구분하는 잣대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가 서열의 상위를 차지하는 쪽으로 변형되어 왔다. 인류가 행하는 대부분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행동 양식들은 대부분 학습을 통해 전승된다. 학습되지 않으면 백지와 같다. 항상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이유다. 


하지만 서열을 매기는 위아래의 질서는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나타난다. 어느 민족 어느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위계의 줄 세우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 지식 있는 자가 서열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현상은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재에도 인간심성을 들여다보는 주효한 도구가 되고 있다.


인간의 두뇌와 신체는 대략 1만 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 시기 이전의 수렵생활에 세팅되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구역사 46억 년의 장수한 세월 속에서 호모사피엔스는 조족지혈의 최근 시간을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정치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를 이끌고 있다 보니 발생하는 해프닝 같은 거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성공한 음모는 유능함의 증거이고 공격성은 용기의 표상이며 신중함은 비겁함의 증거"라고 했다. 싸움판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론과 이상이 다르고 현실과 현장이 다른 곳이 정치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판이 잘 굴러갔으면 하는 바람들을 갖게 된다. 인류역사 어느 시기 어느 나라에, 정쟁 없이 지켜지고 유지되어 온 적이 있던가? 치고받고 싸우고 설전을 벌이고 논쟁을 하는 반복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내고 있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앞으로 가고, 어제보다는 조금 더 좋은 방향, 선한 지향점으로 가고 있다는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더럽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다가 슬그머니 이권에 타협하고 악수하지 못하도록 감시의 눈을 부라리고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공인된 폭력인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한다. 권위와 권력에 맛을 들이면 오만이 따라붙는다. 망하는 지름길이다. 정치인은 항상 신독(愼獨 ;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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