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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1. 2023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변명과 극복

단어(單語, 낱말, word)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말의 최소 단위다. 단어를 기능적으로 조합하고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면 의미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풍부한 단어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재적소의 단어들을 잘 조합하여 일목요연하여 전개해 내는 능력이 곧 글을 잘 쓴다는 평을 받는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과 의미는 비슷하지만 그 문장 구성에 반드시 어울리는 단어인지를 선택하는 판단을 빨리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그 단어의 정확한 표현 용례를 알아야 한다. 사전을 열어 단어가 가진 뜻을 살펴야 한다. 쉽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단어와 문장 뒤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이 아침 장황히 단어의 의미를 나열하는 이유는 어제부터 화두처럼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단어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이라는 단어다. 왜 이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는지 도화선을 찾지는 못하겠다. 천박한 그 누군가의 담화문 속에 있어서 그랬다면 개무시하고 던져버렸을 단어였는데 그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단어도 아닌데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붙잡는다.


어떨 때 이 '어쩔 수 없는'이라는 단어를 쓸까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봤다. 한국어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단일어가 아니라는 소리다. 단어 자체만으로는 정확한 의미전달이 안되고 뒤에 어떤 명사를 수식하는 기능을 통해 상황 설명을 풍부하게 한다.


'어쩔 수 없다'는 뒤에 어떤 명사가 오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묘한 기능을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문장 속에서는 대안이 없다는 뜻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선택한 해결책일 때 주로 쓴다. 숙명론적 결정론 상황을 전개할 때 사용하면 적절한 표현인 듯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문장으로 끌고 들어와 놓고만 보면 해석을 두 가지로 할 수도 있다. '하기 싫은데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비관주의적 해석도 가능하고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비장함이 내포된 어쩔 수 없는 상태'였음도 될 수 있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선택할 수밖에 상태일 때도 '어쩔 수 없는~'이라는 표현은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있을까? 다른 대안이 없어 집어 들고 선택했다고 면피하고 회피할 수 있을까? 최선의 선택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 선택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일까?

'어쩔 수 없다'는 것은 핑계일 가능성이 높다. 선택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없다. 어떤 것이 되었든 선택을 할 때는 최선의 것을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사 차선을 선택할 때도 있지만 그 조차 그 상황에서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단어가 책임과 의무로 연결되면 의미가 더욱 확장된다. 직장에서 직급이 높아질수록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책임들이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할 의무도 생긴다. 책임의 단어 앞에 수식어로 쓰이면 막중한 부담감으로 작동한다. 또한 회피의 뉘앙스로도 동원된다.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아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강조하며 책임의 면피 용어로 사용된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사유할 줄 모르는 무능력(thoughtlessness),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묻어버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무사유의 지적이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의 경계선에 서있다면 한 발을 더 내딛기 전에 주위를 살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맞는지 말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라면 과감히 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닐 수 도 있다면 멈추어야 한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지시를 잘 따르고 업무 규칙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고 비판적 사고 없이 한 행동을 '어쩔 수 없었다' '법이 그렇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라고 덮으면 '악의 평범성'에 빠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선택의 순간에 만나는 단어다. 잘 골라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아량이 필요하고 부당함에 과감히 맞서야 하며 정의로운 일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게 나아가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어쩔 수 없었다"는 과거형 책임 회피는, 생각해보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자백하는 고백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어찌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하는 일은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일이다. 상황에 맞는 분별심을 키우고 가다듬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야 발걸음이 가볍지 않겠는가? 옆 사람의 미소가 보이고 옆 사람의 따뜻한 손길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면 절대 느껴보지 못할 것들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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