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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4. 2023

지구 껍데기에서 '산다'는 것은

다음 주에 하루가 더 남아있긴 하지만 이번주를 7월의 마지막 주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이번달 내내 제가 살고 있는 서울지역의 맑은 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한 비내림 속에 간간이 햇살이 구름층을 뚫고 내려오기는 했으나 거의 회색과 비와 먹구름으로 대변되는 7월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장마철이 오기 전 언젠가, '한 달 모두 비 내리는 구름 표시를 한 달력'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뭐 이런 허무맹랑한 그림을 그렸을까? 아무리 장마철이 온다고 해도 그렇지 비가 한 달 내내 온다고? 그럴 리가 ---"로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것이, 뭐 거의 매일 비가 내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구름으로 가득 찼던 달력의 형상이 떠오르는 건, 그런대로 그 달력의 예지력과 비슷하게 날들이 전개됐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은 이렇게 하루하루 변화하는 날씨에 일희일비합니다만 살이 있다고 하는 모든 생명체가 날씨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지금 이 환경에서 만들어졌고 이 환경 속에서 살며 이 환경이 생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날씨라는 환경은 지구표층에서 벌어지는 대기의 변화일 뿐입니다. 지구를 구성하는 대륙과 대양과 대기의 조합 속에서 움직이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구 껍데기에서 말입니다. 지금 하늘을 덮고 있는 회색 구름들은 모두 지상으로부터 10km 이내에 있는 대류권에 있습니다. 항공기 순항고도에 해당하는 이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면 눈부신 태양이 기다리고 있는 성층권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발아래 뭉개 뭉개 뭉쳐있는 구름들을 펼쳐져 있는 것을 봤을 겁니다.

그 구름 아래 세상이 인간이 사는 세상입니다. 인간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구름 아래 사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태양은 항상 뜨거운 햇살을 내리 비춰 세상만물을 만들고 유지하게 하지만 뜨거움 만으로는 생명을 키울 수 없습니다. 구름이 가려주고 덮어주고 간혹 비로 환생해 피부를 적셔주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태양이지만 유지시키고 것은 구름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구름의 원천도 태양이 만드는 것이긴 합니다.


지구표층의 70.8%를 덮고 있는 대양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풍을 몰고 오고 비바람을 일으키는 시작이 바다입니다. 물의 원천이고 비의 어머니입니다. 물의 대기 순환을 결정하는 것이 태양의 뜨거움입니다. 지구표층의 환경을 지배하는 영원한 신입니다. 그 안에 인간과 생명들이 복작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덥다고 투덜대고 춥다고 신경질 냅니다. 비가 계속되면 그만 오고 해가 났으면 좋겠다고 하고, 해가 쨍쨍 내리비치는 날들이 계속되면 제발 가끔은 소나기라도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간사함은 이렇게 날씨 속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지구표층에서 아웅다웅할 것이 아니라 시선을 조금 넓혀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지구를 내려다는 상상이 필요합니다. 지구에서 38만 km 떨어진 달에 발을 디뎠던 사람은 닐 암스토롱을 포함해 12명이나 되지만 지구표층의 심해인 마라아나 해구의 10km 아래까지 내려갔던 사람은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을 비롯해 4명밖에 없습니다. 지구 껍데기에 살고 있으니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달보다도 지구를 더 모르는 아이러니에 살고 있습니다.


태양계 내의 행성의 지질과 대기의 구성 성분을 아는 것을 비롯, 밤하늘에서 310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오리온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인 베텔기우스가 근세기에 초신성 폭발을 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놓을 정도이지만 정작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의 내부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시선의 방향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앞을 보도록 진화한 물리적 시선의 방향은 인지의 방향조차 밖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끔은 시선의 방향을 안으로 돌리고 뒤로 돌려봐야 환경을 종합적으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지구표층의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머물러 있는 기간이 길다고 죽는소리를 할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가 자연환경의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넓게 깊게 보는 시선의 방향 전환은 의외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지구 표층을 떠나 밤하늘의 별로 시선을 높이는 한편, 대지의 속살을 보러 동굴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하고, 아직도 미처 내려가보지 못한 바닷속 심해에 불을 밝혀볼 일입니다.


지금 서울의 하늘에는 비를 내려놓고 난 후의 흰 구름도 있고 아직 비를 머금은 잿빛 구름도 있으며 그 구름 사이사이로 햇살도 지상으로 비추고 있기도 합니다. 밤새 내린 비로 촉촉한 대지로 쏟아지는 태양빛은 그 물기를 다시 대기로 끌어올려 구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물이 습기가 되어 피부겉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대기의 압력차로 바람도 살랑살랑 몰려 갑니다. 지구 표층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변하고 흘러갑니다. 움직입니다.


인간이 어쩌지 못하던 자연환경에 개입을 하여 지구표층에 인류세(Anthropocene)의 금을 긋고 있습니다. 자연에 개입하고 있는 유일한 동물 종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정도를 다행으로 알고 있어야 할까요? 알면 실천해야 합니다. 대지에 대양에 대륙에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사는 환경을 나 스스로 뜨겁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혼자 편하려고 마구 사용하고 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지구 껍데기가 지닌 포용력의 한계를 시험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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