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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8. 2023

과학과 문화와 미신 정도는 구분해야 하지 않나?

달에 사람을 보내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21세기를 사는데 한반도는 요즘 풍수지리가 새삼 인기인 모양이다. 발원지인 최고 권력 집단에서 '문화'라고 항변하고 있단다. 뭐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하긴 하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왕 자도 새겼는데 무슨 짓 인들 못하겠는가? 이런 글 썼다고 여당 비판논자라고 하거나 야당 옹호론자라고 보지 마라. 나는 잘하는 놈 편이다.


아직도 과학과 유사과학을 혼동하고 사실과 믿음의 차원을 헷갈려하고 종교와 미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은 조작된 거라고 한단다. 미친 거 아닌가? 그래도 자기들의 신념은 확고하단다. 중세적 사고관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조차 일상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있다. 옆집 똥개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옆집 발바리도 잘 먹고 잘 짖고 잘 논다.


이런 사람들은 일생에 단 한 번도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본 적이 없을 테고 현미경을 통해 세포의 미시세계를 들여다본 적이 없을게 틀림없다. 자신의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진실이라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인문의 세계에서는 통한다. 자세히 몰라도 된다. 지구는 돌지만 나의 일상과는 전혀 상관없다. 지금 나에게는 낮과 밤이 교차되는 게 중요할 뿐 지구가 도는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왜 도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 머리 아프게 왜 그딴 걸 따지고 지랄일까? 낮이 가면 밤이 오고 태양이 지면 달이 뜨는 거지. 이렇게 속 편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틈새로 유사과학과 미신이 스며든다.


내 주변에도 주기적으로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사주팔자를 꺼내놓고 역술과 명리학은 심리학이고 확률이고 과학이라고 우긴다. 용하다는 역술가를 찾아간다. 친구 사이에 어디에 누가 잘 맞춘다는 소문들이 암암리에 퍼져있다. 지방에 있다고 해도 꼭 찾아간다. 다녀와서는 정말 잘 맞추더라고 자랑을 한다. 사주 보러 간 것에 대한 합리화의 일환으로 그렇게 믿는 것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믿으면 그렇게 용하게 된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역술가들이 내놓은 해답은 두리뭉실 타법의 전형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안에 큰 대운이 들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 하반기에는 경기가 좋아져 주식이 반드시 올라갈 것인데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 따라 조금 영향을 받을 것이니 신중히 처신하시라"라고 점괘를 낸다. 이 점괘를 받아 들면 찾아간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맞게 재해석을 한다. "올해 승진할 차례인데 나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 틀림없고 지난번에 주식을 2차 전지로 갈아탔는데 다음 달이면 슬슬 올라갈 것"으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예상했던 상황들이 닥치면 "역술가 정말 용하네. 어떻게 다 알아맞혔지. 예지력이 있나 봐. 신내림을 제대로 받았군"이 된다. 역술인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황 해석을 잘 못하는 당사자가 문제다. 두리뭉실 모든 상황에 맞는 답을 내놨는데 틀리는 것이 이상하다.

나는 고려말 목은 이색의 37대 후손인 한산 이 씨다. 우리 선조 중에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 선생이 계시다. 우리 집안 자체가 한해 운수를 보는 비책을 만들었으니 토정비결을 신봉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어려서 할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셨을 때는 설 명절 임박하면 서점에서 토정비결의 운세 숫자를 맞출 수 있는 책력을 사 오셨다. 책력 뒤편에 생년월일의 세 숫자를 따라가 토정비결에 적힌 숫자로 찾아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그 숫자를 따라가면 그 해의 운세가 총론과 함께 월별로 적혀있다.


설날 차례를 지내고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할아버지께서 항상 이 토정비결을 꺼내놓으시고 식구들의 한해 운세를 일일이 읽어 주셨다. 그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토정비결을 우리 선조께서 쓰셨지만 일 년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좋은 일이 있다고 하면 겸손히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 있다고 하면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여 나쁜 일과 맞서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라고 하셨다. 참고하라는 뜻으로, 명절날 재미 삼아 한해 운세를 예견해 보는 정도로 받아들이라는 충고셨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에서 토정비결을 보는 일은 설날에 재미 삼아하는 윷놀이 같은 거였다. 


미래의 운세와 풍수를 따지는 것은 '불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가올 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어떤 작은 방향의 단초라도 제공하면 그렇게 될 듯하고 마음의 평정도 찾을 수 있게 된다. 믿어버리게 된다. 믿고 있으니 그렇게 될 가능성의 확률이 더 커진다. 유사과학, 미신, 풍수 등이 21세기에도 판을 치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런 부류를 과학이네 아니네를 따지는 질문 자체가 맞지 않는다. 그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다독여주는 유용한 도구로 통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만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결과가 우연(coincidence)인지 인과관계가 있는 건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구에서 6억 km나 떨어진 태양계 끝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풍수를 이야기하면 배산임수가 좋은 걸까? 좌청룡 우백호는 맞는 걸까? 한낮 먼지일 뿐인데 ---


과학은 미신에 철퇴를 가하는 증거를 들이미는 작업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지어내는, 사기의 원천을 까밝히는 조명이다. 제발 유사과학과 미신 등에 속지 말자. 속지 않으려면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된다. 공부하지 않으면 속게 되어 있다. 내가 게을러서 속을 뿐이다. 역술인이나 무당을 폄하하거나 할 필요 없다. 휘둘리지 않는 내공을 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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