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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30. 2023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과 기념품이 남는다

여행을 다녀오면 무엇이 남을까?


첫 번째로 '사진'이 남는다. 갔다 왔음을 증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로 작동한다. 요즘은 동영상이 인증사진을 대신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는 여행지에서 산 기념품들이 남는다. 기념품이라고 해봐야 현지 풍물이 담긴 마그넷이나 작은 전통 인형, 스노볼 정도다. 유명 아웃렛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나름 브랜드 있는 옷도 저렴하게 사기도 한다. 크기가 크면 여행기간 내내 짐이 되기에, 최대한 크기는 작되 현지의 특징을 담고 있어야 한다. 여행지 선물로 현지 풍광이 담겨있는 마그넷이 인기인 이유도 바로 부피가 작아 부담이 없고 가격도 대부분 3달러 이내이고 재수 좋으면 3달러 정도에 2개씩 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을 가면 편의점에 들러 생수라도 한 병 사는데 신용카드 결제하기도 그렇고 하여 현금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며칠 지나다 보면 주머니에 동전에 늘어난다. 아시다시피 동전은 귀국해서도 환전이 안된다. 주머니 무게를 덜기 위한 방편이 마그넷을 사는 것이다. 공항마다 유니세프 자선기금 동전 모으기 함이 있을 테지만 일부러 찾아가서 동전을 넣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와 정성이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만해도 그렇다. 특히 1년에 한두 차례 해외여행을 다닌 지가 30년도 넘은지라 갈 때마다 한두 개씩 사온 기념품들이 거실 장식장을 채우고 있다. 세월이 괘 흐르다 보니 모아놓은 기념품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하지만 기념품을 사는데 철칙이 있다. 절대 100달러 이상이 넘는 기념품은 사지 않는다. 지금 거실 장식장에 있는 기념품들은 모두 비싸야 70-80달러 수준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해외여행 중 제일 비싸게 샀던 것은 지금 거실바닥에 깔려있는 투르키에 카펫이다. 2019년 갔을 때 샀는데 아마 500유로 조금 더 주고 산 듯하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도 그렇고 기념품들도 그렇고, 모두 여행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희미해져 어디에 갔었는지 떠오르지 않고 심지어 "그런 곳에 갔었나?"를 되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망각의 기억을 최대한 늦추고 지속적으로 기억 속에서 소환하여 회상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바로 '사진'과 '여행지 기념품'들이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도구들인 것이다.


지난 주말, 동유럽을 한 달간 배낭여행으로 떠났던 막내 녀석이 별 탈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8월 초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들어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귀국을 했다. 그리스와 불가리아도 처음 여행 계획에는 있었지만 다녀보니 일정이 길어져 유럽 동남쪽 나라들은 못 가고 중간에 일정을 바꿔서 다녔다고 한다. 


한 달 동안 동유럽을 돌아다닌 아들 녀석의 배낭에 뭐가 담겨있는지 궁금했다. 하루 1-2만 원 하는 호스텔을 찾아다니고 버스를 타고 계속 이동하는 탓에 최대한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돌아다닌 나라마다의 기념품은 한두 개씩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기념품은 달랑 마지막 나라였던 헝가리에서 산 작은 목각인형 하나가 전부였다. 


막내 녀석은 기념품보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에 담고 왔다. 여행 후일담 이야기의 대부분이,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에서 여행 온 비슷한 또래의 여자와 트레킹을 같이 갔던 일, 폴란드에서 온 남자로부터  밤늦도록 여행정보를 들었다는 이야기, 호스텔에서 코를 골며 자던 아랫침대의 영국 여자 이야기 등 모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어느 나라 어느 여행지가 멋지고 좋다는 이야기보다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그들과 같이 다니다 헤어졌는데 다른 나라, 같은 호스텔에서 또다시 만나 맥주를 마셨다는 이야기, 세르비아에서는 길거리 농구에 합류하여 같이 운동했던 학생들의 이야기 등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이 여행 한 달을 채우고 있었다.

세상을 여행하는 목적과 관점이 이렇게 나이대에 따라 다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 같은 꼰대들은 그저 멋진 곳, 예쁜 곳을 찾아, '나 여기 다녀갔음'을 알리는 인증사진 남기기에 급급하지만 젊은이들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모습에서 새로움을 찾는 듯하다. 우리 꼰대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듯하여 나름 뿌듯해지기도 한다. 이는 외국인들과 자유로이 대화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언어 소통의 문제인 듯하다. 우리 꼰대 세대들이야 그나마 하는 영어라도 떠듬떠듬하는 수준이어서 항상 위축되어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영어 정도의 언어는 우리말 하듯이 하는 수준이라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기 생각, 자기 의사는 분명히 전하고 외국인들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기에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그랜드투어처럼 공부를 하는 여행일 수 도 있고 현재를 툴툴 털어내는 휴양지 인피니티 풀에서의 여유로운 여행일 수 도 있으며 제 아들놈처럼 세계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여행일 수 있다. 여행은 다양성을 담는 일일 것이다. 평소 생활 영역에서는 전혀 보지 못하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여행을 통해 다양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그 다양함이 결국 나의 기억 속에서 새로움을 만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인도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도 통섭하여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냉장고 한쪽 면을 채우고 있는 마그넷들을 힐끗 쳐다보며 그동안 발길이 닿았던 바르셀로나의 풍광과 브뤼셀 그랑플라스의 야경들을 되새기게 된다. 그렇게 여행의 잔해물들이 쌓인 것을 볼 때마다 가끔은 해외여행길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되살아나 실없는 사람처럼 헤죽헤죽 웃게 된다. 그렇게 기억은 추억의 한 자락을 소환하고 사진과 기념품들은 추억의 영상을 되돌리는 스위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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