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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6. 2023

'아는 것'과 '아는 체하는 것'의 차이

'아는 것'과 '아는 체하는 것'의 차이는 질문을 해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안다는 것'은 의식이나 감각으로 느끼거나 깨닫는 것이다. 체화되어 브레인의 장기기억에 절차기억으로 저장되어 있어 언제든 꺼내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안다'라고 한다.


'아는 체하는 것'은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민다는 뜻이다. 브레인에 저장되어 있는 렉시콘의 단어를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황이 담긴 의미기억만을 유추해 내서 조합을 하는 수준이다.


 '아는 체하는 것'은 금방 들통이 난다. 말의 앞뒤가 안 맞고 인과관계도 미약하다. 들을 때는 그럴 듯 하지만 듣고 나면 와닿는 게 없고 남는 게 없다. 당연하다. 앞뒤가 없으니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이 맥락이 안 맞는 것을 들킬까 봐 닦달하듯 말을 이어간다. 상대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사기꾼은 자기가 거짓 정보를 엮고 있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항상 상대방보다 한 수 위에서 말을 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에 당하는 사례를 보면 "저런 전화나 문자에 어이없이 당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돼"하다가도 막상 자기가 그런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꿍꽝거리고 얼이 빠진 듯 끌려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전화를 끊거나 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아는 체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바로 공부에 대한 지식에 관해서다. 아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하고 오래 간직하고 싶을 때는 타인에게 자기가 아는 것을 설명하고 발표해 보면 된다. 말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문맥에 맞게 표현한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횡설수설하게 되고 얕은 지식으로는 겉핥기식 표현밖에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식도 드러내 봐야 한다. 겉으로 드러내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질하듯 설명을 해보면 내가 어떤 분야에 얼마나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때 '아는 체하는 것'의 역할은 지식의 범위를 넓히는 부스터 역할을 한다. 모르는 범위에 대한 크기를 알게 하고 사실을 확인하고 확장하는 단서가 된다. 일단 '아는 체'했으니 어떻게든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동하고 선한 스트레스로 작동한다. 자료들을 찾아보고 구멍 난 지식을 메꾸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 '아는 체'는 모름을 드러내는 트리거임을 명심해야 한다.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충 아는 것을 잘 아는 것으로 말을 하다가는 그 책임을 온통 독박 쓰듯 뒤집어쓰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런 정황은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드러나고 수없이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아는 체'는 과시용으로 등장한다. "나는 정치계의 누구를 안다. 지난주 그 유력인사와 식사를 같이 했다" 수준이다. 유명세가 있는 사람과의 친분을 내세워 자기의 위상도 그 사람과 동급임을 자랑하고 자기의 능력도 그만큼 됨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번 만난 사이임에도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한다. 특히 이런 사람들의 부류는 반드시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증거용으로 은근슬쩍 보여준다. '아는 체'하는 전형이다.


'아는 체'는 또한 허세 작렬의 표본이다.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데의 밑바닥은 반드시 이 허세가 깔려있다. 과장되게 부풀리는데 '아는 체'하는 것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남들이 그렇게 믿을 거라고 속단하기 때문이다. 속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속이는 사람보다 더 모르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허세가 먹히는 것은 그것이 허세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는 체'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많이 알고 넓게 알아야 한다. '아는' 것과 '체와 척의 사이를 명확히 아는 것, 그 차이를 구분해 내는 능력이 속지 않는 길이다. '아는 체'와 '아는 척'이 '안다'라는 행위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 눈치채는 일이다. 내가 모르면 속는지 조차 모르고 당하는지조차 모른다. 지식에 있어서도 그렇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무엇이 되었든 많이 알고 넓게 아는 일에 끊임없이 매진해야 한다. 기억의 서랍에 넣어둔 단어들이 많아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다. '아는 체'하는 수준을 넘어 진정으로 '아는 것'의 경지로 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기억의 회로는 쓰면 늘어나고 연결을 확장하지만 쓰지 않으면 끊어진다. 확실히 알 때까지 반복하고 반복하고 외워야 한다.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 때 그것을 안다고 한다. 컴퓨터에 휴대폰에 들어있는 지식과 지혜는 내 것이 아니다. 아는 체하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외부에 저장되어 있는 지식을 내 머릿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일, 치매를 늦추는 결정적 활동일 수 도 있다. 아는 것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고 새로움에 더욱 관심 갖고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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