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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7. 2023

지도자가 버려야 할 3가지

지도자가 버려야 할 항목을 꼽으라면 오만과 독선, 아집일 것이다. 이 3가지를 잘못 읽으면 자신감에 넘치고 리더십이 있으며 줏대가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망하는 지름길이다.


오만(傲慢, hubris)은 태도나 행동 따위가 방자하고 건방진 것을 말하고 독선(獨善, self-righteous)은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며, 아집(我執, egotism)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좁은 소견에 사로잡힌 고집을 말한다.


이들 단어가 지도자와 연결되면 그렇게 싫어하는 독재(獨裁, dictatorship)와 상통한다. 역사를 통해 너무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구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되면 거의 예외 없이 그 작태를 보이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더러운 욕망이, 그 자리에 가면 스멀스멀 작동을 하게 하는 기묘한 뭔가가 있는 듯하다. 왜 그럴까? 그렇게 늪의 구렁텅이로 끌려들어 가는 원인이 무얼까?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엉망으로 가는 이유가 뭘까? 초심을 잃고 부패와 오만과 독선과 아집으로 달려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되도록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렇게 심성과 행동도 따라 변하는 것일까?


(오늘도 disclaimer를 걸고 가야겠다.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아도 누구일 것이라고 받아들일 테니 말이다. 이 글은 어느 누구를 특정하여 쓴 글이 아니다. 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추궁할지 모르겠으나 제 발 저리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전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이런 하찮은 생각의 전개에도 하도 시비 거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 자기의 생각을 전하고 표현하는 정도가 아니고 전투적인 자세로 덤벼드는 분들이 계신다. 그냥 저런 생각하는 놈도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오만과 독선과 아집에는 only one 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군주제가 득세하던 시절에는 먹혔을지 모르는 권력의 힘일지 모르나 공화정이 득세하는 현실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다양성이 공존하고 타협과 토론을 통해 양보하고 함께 가는 모습이 민주주의의 전형일 텐데 "그렇게 봐주고 양보하고 미루다가 어느 세월에 정책을 펼쳐, 그냥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힘으로 해결해. 국민들이 다 이해해 주실 거야. 말 안 듣는 놈들은 불러다 조지고 하면 되지. 국민들에게 변하는 모습을 빨리빨리 보여드려야 할 거 아니야. 쉑히들이 빠져가지고 미적미적하고 있어. 당장 해"


이상과 현실이 다를 때는 현실이 더 피부적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폭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길거리 조폭이 안 없어지는 이유와도 같다.

세상 어느 지도자도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끼지 않는다. 자기는 정말 잘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밤잠 설치며 국가와 민족, 국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왕실의 안위만을 챙기느라 나라를 팔아먹은 조선시대 어느 군주도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테고 근래에 자리에서 쫓겨난 누구도 자기도 평생을 바쳐 나라를 위해 일했다고 생각했을 터다. 그런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면 나라를 팔아먹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자리에서 쫓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오만이고 독선이고 아집이다.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지 못하면 자기의 성을 쌓게 된다. 사상누각임에도 인지하지 못한다. 자기는 강철로 성을 보강한다고 생각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점점 모래성만 높이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자신만 모른다. 주변에 제대로 된 책사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면 바깥의 상황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비록 적이지만 만나야 하고 정책적 반대파일지라도 손을 잡아봐야 자기를 알 수 있는데 이것을 하기가 쉽지 않다. 지도자의 역량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명 나는 것이다.


국가는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고 기업은 사장을 잘 선출해야 한다.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게 국민의 실력이고 종업원의 역량이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하는 게 정치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맞아떨어지는 비극적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지금 정치 수준이 결국 국민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 더러운 정치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시민들의 역할이라고 외면하고 있으면 그 더러운 정치가 깨끗해진다는 것은 점점 요원해질 뿐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있을 때 민주주의가 힘을 발휘한다.


오만과 독선과 아집을 권력자가 쥐고 있으면 내려놓기 쉽지 않다. 권력은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맛을 보면 도저히 끊을 수 없다. 지도자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신독(愼獨 ;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 이 어려운 이유다.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굴러가고 정치판의 아비규환도 있을 것이고 지금 들리는 엠블런스 사이렌 소리도 섞여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문제없이 흘러가도록 하고 싶은 소망은 진영이나 사상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통된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섞여 있으되 각각의 맛과 색이 개성을 갖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샐러드볼(salad bowl)과 같은 곳이 지금 우리가 숨 쉬는 공간이다. 용광로같이 단일화되고 획일적으로 끌고 가던 시대는 지났다. 무엇을 더 살리고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알면서도 안 되는 이유를 찾아 하나씩 해결해 보자. 대화와 타협과 협력 없이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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