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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15. 2023

자연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발견과 발명을 통해 삶의 조건들을 바꿔나가는 유일한 종이다. 환경에 순응하여 적응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에 모자라 자기에게 맞고 편하게 바꿔나가는 재주를 지녔다. 이 재주가 지나쳐 지구 환경을 변형하고 파괴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자기가 사는 터전을 오염시키고 있음에도 자연의 치유력을 믿으라고 항변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정화작용을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지, 있는 것도 못쓰면 어떡하냐고 윽박지른다. 과학을 들먹인다. 과학을 욕보이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은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증명을 하고 증거를 내놓는 것이다. 비교할 데이터도 미미하고 측정 데이터도 한정되어 있는데 몇몇 제시되는 숫자만으로 과학이라 주장한다. 몇몇 측정 숫자 가지고는 과학자들을 설득할 수 도 없고 설득되지도 않는다. 지금부터 쌓이는 데이터로 벌어질 일을 확률적으로 추정해야 한다. 과학은 입으로 싸우는 학문이 아니다. 엄정하고 엄밀함이 생명이다. 그 생명의 원천은 데이터 측정이다. 측정 데이터 값으로 말하는 것이 과학이다.


원시로의 회귀가 가장 바람직한 환경 이용법은 아닐터다. 영악한 호모 사피엔스이니 대기와 대지와 대양의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방법도 분명히 찾아낼 수 있다. 그때까지 심사숙고하고 해결방법을 찾는데 전 인류가 매진해야 할 일이다.


자기는 거기에 살지 않으니 괜찮겠지 무시한다. 태풍의 위력이 점점 커진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은 튼튼하고 내진설계도 되어 있으니 끄떡없을 거라 자위한다. 도심농장에서 수경재배한 식재료만을 먹고 있으니 토양오염으로 인한 폐해도 남의 일일 뿐이라고 외면한다. 당장은 자신에게 피해가 없으니 괜찮은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지구가 돌고 있듯이 대기와 대지와 대양은 순환을 한다. 반드시 나에게 그 피해가 돌아온다. 그로 인해 그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다른 생명은 씨가 말라 황무지로 변해간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지구 환경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변해가는 지구 환경에 대해 자각하고 자성하는 호모족들이 등장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3시간 이내에 철도나 도로로 연결이 가능한 도시 간에는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는 나라들이 생겼다. 변화의 시작이지만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교통 인프라가 발달한 유럽에서나 가능한 일일 수 있으나 모든 인간 활동 분야에 걸쳐 하나둘씩 환경을 생각하는 정책들이 펼쳐지다 보면 오염의 숫자들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지구환경은 공생하도록 생명 지어진 곳이다. 유아독존으로는 절대 인간의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있을 것처럼 다른 생명들을 박멸하고 있다. 살충제를 살포하고 항생제를 뿌려 특정 개체만 남겨두고 아예 씨를 말린다. 결국 식량으로 남겨둔 몇몇 동식물만 남겨두고 점점 멸절의 길을 가고 있다. 남겨둔 몇몇 식물조차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한 순간 한꺼번에 멸종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다양성이 생명이다. 다양해야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겨내는 녀석이 있게 되고 그 자손이 다시 번성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 모두가 똑같으면 죽는 시간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


지구표층에서 생명의 멸절 속도가 점점 가속화하는데 인간의 역할이 지대함은 자명하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다른 생명을 과도하게 살육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동물들은 배부르면 절대 사냥을 하지 않는다. 혹한을 이겨내기 위해 동면에 들기 전 많은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 동물조차도 그렇고 심지어 바이러스조차 기생하는 숙주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용한다. 숙주가 죽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것을 바이러스조차 알고 있기에 독성의 강도를 약하게 하여 더 많이 전염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인간이 똑똑한 것 같지만 바이러스의 전략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생명 진화의 나무에서 줄기를 썩게 하는 인간의 오만은 지구생명의 소멸을 가속화시키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 혼자 절약하고 안 쓴다고 지구 환경에 뭐가 좋아지는데?"라고 항변할지라도, 지금 도로를 오가는 수많은 자동차가 내뿜어 발생하는 대기오염은 내가 안 쓰고 안 타고 타니는 것 평생 해봐야 소용없는 짓이라고 비웃을 지라도 한 발 한 발 나서야 한다. 숫자 놀음이고 이런 위기감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에게 당하는 일이라고 비난을 할지라도 내가 하고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지금은 자연환경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역치(閾値, threshold)의 끝까지 다가서 있다. 이 역치를 넘어서는 순간 지구환경은 급격히 변해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생명이 생존할 수 없는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사실 이 지구 환경변화는 지구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다. 지구는 아무 관심도 없다. 대기와 대지와 대양이 오염이 되든 말든 말이다. 지구는 폭풍우로 휩쓸고 화산으로, 지진으로 들끓어 다 태워버려도 아무 상관도 안 한다. 거기에 살고 있는 인간만이 걱정하고 당혹해할 뿐이다. 


지구 생명 대폭발이 있었던 6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규모 생명 멸종 사건이 있었다. 그 마지막 멸종 사건이던 7천5백만 년 전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 포유류였다. 포유류 번성의 틈에 끼어 그 번성의 끝이 될 수 도 있는 시기를 인간이 앞당기고 있다. 46억 년의 시간을 지나온 지구의 역사에 인간으로 인해 지구 표층의 생명이 멸종했다는 굴레를 새기게 해서야 되겠는가? 개인의 역사는 100년이고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20만 년이나 될까? 그나마 기록으로 남긴 역사는 5천 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지구는 46억 년을 살아왔다. 까불지 말고 기고만장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역사에서 인간은 그저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건방 떨며 건들대다가 한방에 가는 수가 있다. 조심하자. 조신하게 자연에 순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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