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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18. 2023

해외여행 가서도 조깅하는 이유

일요일이었던 어제.


평소 주말아침처럼 신발끈을 질끈 매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젠 아침운동이 습관처럼 몸에 밴 탓에 운동을 안 하면 오히려 몸이 이상반응을 합니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저녁운동을 하지만 아침에 조깅하는 상쾌한 맛은 휴일이 제격입니다.


아침 조깅을 시작한 지는 20년도 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하기도 전에 했으니 말입니다. 그전에는 저도 뛰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당시 여의도 고수부지를 뛰는 마라톤 행사에 참가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에도 10km 건강 달리기 수준의 코스만 신청해서 뛰었습니다. 그 뒤로 여러 마라톤 행사에도 참가하면서 계속 10km를 뛰었습니다. 거리를 늘려볼까도 생각했는데 거리 늘리는 도전은 쉽지 않았고 해 볼 용기도 나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나름 건강을 위한 조깅으로는 저에게 10km가 적당하다는 판단에서 이기도 했습니다. 제 체력이 버틸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거리는 딱 10km까지만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뜀뛰기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침 조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조깅을 가볍게 하는 경지(?)에 까지 왔습니다. 러닝화와 반바지, 반팔만 캐리어에 넣어가면 되니 짐 무게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을뿐더러 시차적응도 쉽게 하고 해외 현지의 강변이나 해변을 뛰는 맛도 제법 쏠쏠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에서 뛰는 10km 코스는 3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제가 만든 나름대로의 코스인지라 집을 나서면서는 오늘 어느 코스를 뛸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가 뜨기 전에 집에서 나오면 중랑구청을 끼고 봉화산 옆길을 돌아 봉화산역 뒤쪽으로 묵동천으로 내려갑니다. 이 묵동천 줄기가 중랑천으로 연결됩니다. 태릉역 밑 장미공원을 끼고돌아 중랑천변을 달려 이수교를 지나 중랑교에서 올라와 망우로를 달려 집으로 옵니다. 딱 10km의 거리입니다. 이 중랑천 코스는 나무 그늘이 거의 없어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뛰기 힘들어집니다.


출발시간이 해가 산등성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면 집에서 망우로를 달려 망우역사문화공원을 향합니다. 예전 망우리공동묘지입니다.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묘역이라 지금은 산책로에 울창한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한낮에도 나무 그늘 속으로 산책을 하고 조깅을 할 수 있습니다. 망우산 중턱에는 5km의 산책로가 잘 포장되어 있고 중간중간에 한용운 선생 묘, 도산 안창호 선생묘, 죽산 조봉암 선생묘 등등이 있어 눈도 심심치 않고 중간에 옹달샘도 있어 시원하게 머리에 물을 끼얹고 뛸 수 있습니다. 이 코스도 집에서부터 딱 10km 코스입니다.


세 번째 코스는 봉화산 둘레길을 뛰는 겁니다. 이 코스는 거리는 5km 남짓되지만 산허리를 도는 거라 높낮이가 제법 있어서 뛰는 강도는 10km에 다가설 정도는 됩니다. 짧은 시간에 뛰고자 할 때 이용하는 코스입니다.

가끔 아침 조깅을 하면서 "지금 내가 왜 뛰고 있지?" 물을 때가 있습니다. "해도 뜨기 전 새벽에 나와서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리는 이유가 뭐지?"라고 말입니다. 휴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을 때 그냥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는 여유가 쉬는 데는 더 그만임을 압니다. 이 유혹을 뿌리치고 신발끈을 매는 것이 쉽지 않음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뛰고 있는 나를 향해 묻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봅니다.


"미래의 건강을 위해서 뛰는 걸까? 치매에는 걸리지 말아야겠다는 의지의 발로인가? 적어도 내 발로 걸어 다니는 정도의 신체 기능을 위해 체력을 다지기 위한 행위일까?" 묻습니다.


뛰는 내내 이 질문을 화두처럼 들고 있습니다. 귀에 끼워져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최재천 교수와 유시민 작가가 풀어내는 '다윈지능'에 대한 해박한 썰이 들리고 있지만 잠시 멈추어 놓습니다. 타인이 주장하는 자연의 이치에 대한 해설보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현상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뛰다 걷다 하는 시간이 촘촘해질수록 숨을 고르게 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집니다. 걷는 시간보다 뛰는 시간이 늘어나는 시점이 되면 몸이 먼저 편안해집니다. 호흡도 다리 근육도 일정하게 움직이며 달리는데 적응을 합니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오히려 더 쌩쌩해집니다.


왜 지금 이 시간 내가 뛰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어냅니다. 미래를 위해서도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뛰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을 위한 것임을 알아챕니다. 가쁜 호흡에 집중하고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오는 공기의 선선함조차 느끼게 됩니다. 도로변을 뛸 때 지나가던 자동차의 엔진 열기가 훅하고 들어오는 순간도 있습니다.


온통 오감이 예민해져가고 있음을 눈치챕니다. 몸을 쓰면 감각적 기관도 활성화됨을 직감합니다. 뛰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와 작살처럼 박힙니다. 덩굴장미와 능소화의 색깔도 보이고 비 내린 중랑천의 황톳빛 물빛과 그 물에서 전해지는 비릿한 물냄새까지도 코로 전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 보이고 들리고 코로 전해지는 향기에 땀에 젖은 살갗에 녹아드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갑자기 울컥합니다.


지금 이렇게 뛰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존재의 위치를 발견합니다. 거창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뛰고 숨 가빠하고 힘들면 걷다가 다시 뛰는 그 모습을 유체이탈해서 내려다보듯 합니다. 그렇게 살아 있음을 발견하는 도구로 아침 조깅은 나에게 훌륭한 명상의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생명은 C(탄소) H(수소) N(질소) O(산소) P(인) S(황)의 여섯 개 원자가 결합한 상태로 대기와 대륙과 대양 사이를 순환하며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이라는 허울을 쓴 존재로서의 나는 이 순환의 사이클에서 잠시 결합에너지를 모아놓은 상태를 지날 뿐입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특별한 생명의 축제에 내가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침에 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유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산책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독서를 통해서도 가능할 겁니다. 그렇지만 몸을 조금 많이 움직이게 하여 몸의 화학에너지를 활성화시켜 놓은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관념을 던져놓으면 좀 더 명확한 자기 찾기가 가능해집니다.


운동의 쾌감은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모든 감각이 체감각을 통해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고민은 가벼워진다"라고 했습니다. 운동, 조깅은 결국 움직임입니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멈추고 서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은 위대합니다. 행동하는 데는 엄청난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매일 하는 일이 있어야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좌절감에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부와 명예와 권력과 지식을 갖습니다. 행동하는 인간이 존경받는 이유입니다. 조깅과 같은 운동은 행동의 기반을 만들고 심신을 안정시키고 과외로 건강까지 챙기게 만드는 발판입니다. 움직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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