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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22. 2023

가을하늘에 빠지다

매일보고 자주 보면 예쁘고 귀한지 모릅니다.

어쩌다 한번 볼 수 있어야 기다려지고 또 보고 싶어 집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세상을 만들고 사람들의 관계를 만듭니다.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적응하고 진화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그게 살아가는데 더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황당하게도 보이지만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합니다.

가치를 두지 말고 비교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개는 개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태양은 태양대로 존재 자체로 그냥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의 찬란함에 눈물이 왈칵합니다.


요 며칠 사이 하늘은 잿빛 구름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가려 태양을 숨기고 물을 파도쳐 대지로 고개 숙이게 했습니다.

하늘에 만들어진 물의 호수가 모두 대지로 내려앉아 바위로 스며들었습니다.

텅 빈 하늘과 다시 세를 규합하려는 H2O의 색깔들을 봅니다.

푸른 바다가 역류하여 머리 위로 펼쳐집니다.


갑자기 숨이 가빠집니다.

깊은 대양에 빠진 듯 호흡을 멈추고 스노클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리다 띵하니 가을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에 정신을 차립니다.


오랜만에 보니 얼마나 이쁜지요, 얼마나 경이로운지요, 이 경이를 느끼고 있는 나 라는 존재는 또

얼마나 놀라운지요.


이 모든 현상이 저 빛나는 태양으로부터 시작됨을 압니다.

청푸른 가을하늘에 걸린 흰색 구름들도 태양빛의 산란으로 인하여 희게 보입니다. 태양빛이 물 분자들이 모여있는 구름 사이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며 색이 섞였기에 그렇습니다. 빛은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 색이 본류입니다. 이 삼원색의 합쳐지는 조합의 농도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색깔이 결정됩니다. 빛의 삼원색이 합쳐지면 흰색이 되는 원리를 구름들은 그냥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무기물들이 저렇게 다채로운데, 움직이는 유기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주에서 아직까지 유일하게 생명이 존재한다고 알려진 지구표층의 현상들에 경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피부에 닿는 기온의 변화에 벌써 색깔을 내려놓기도 하고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해 또 한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생명을 기다리게 하고 준비하게 하고 활화산처럼 뜨거움을 내놓기도 하는 원천조차 저 눈부신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떠오르고 매일 만나니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태양이 그렇고, 숨 쉬는 공기가 그렇고, 마시는 물이 그렇고, 옆에 있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상대를 느끼고 존재가 있음을 알기 위해서는 가끔은 떨어져 있어봐야 합니다.

밝은 대낮에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봐야 하고 숨을 멈추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참아봐야 합니다.

여행을 떠나봐야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옆사람과 멀리 있어봐야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 일상에서 화들짝 놀라 일상을 다시 바라보고 다시 물들듯 침잠하여 지나다가 다시

화들짝 놀라는 현상의 반복입니다.

항상 깨어있으면 깨어있는 줄 모르고 항상 침잠해 익숙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줄 모릅니다.

상황이 변하는 순간을 눈치채고 아는 것, 그 예민함의 정도가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태양이 비추는지, 비가 오는지 감흥이 없으면 그저 그런 삶들의 연속이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순간순간을 잡아채면 순간순간이 경이로워집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아침햇살의 따스함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사에 찌들어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머리채를 흔들어 날려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경이가 눈에 보이고 가슴도 두근거립니다.

이 가을에 사랑할 힘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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