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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25. 2023

'지금 이 순간'만을 살면 행복할까?

'똑똑하다(smart)'는 정의는 무엇인가?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소리다. 이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기억력이 좋다는 소리는 머릿속에 든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잘 인출해 내는 능력이다. 기억해내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기억하지 못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기억의 연속성을 현재라는 시간으로 끌고 와서 표현할 때만이 유효성을 갖는다. 


얼마나 기억하느냐가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숫자가 되었든 장소가 되었든 글이 되었든 머릿속에 든 것을 끄집어내는 행위다. 끄집어낼 기억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추억만을 반복해서 회상한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것밖에 모르니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끊임없이 기억이 지워지지 않게 다듬고 반복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서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꼰대소리 안 듣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 공부다.


공부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라고 자책하고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냥 하면 된다. 꼭 책을 읽어야 하고 어려운 수학문제 푸는 것이 공부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악기가 되었든 노래가 되었든 춤이 되었든 운동이 되었든 소설을 읽든 자연과학에 눈을 돌리든 무엇이 되었든 지금까지 안 해본 것을 행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공부다.


브레인에게 공부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접하면 된다. 좀 더 재미있는 것,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것도 브레인이 새로운 것을 찾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말초적인 것, 가장 흥분되는 것들에는 쉽게 빠져들면서 그 호기심을 긍정의 방향으로 돌려놓지를 못한다. 좀 더 쉽고 빠른 길을 가고자 하는 말초적 자극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억은 실체가 있다. 기억은 브레인의 해마에서 만들어지고 대뇌피질에 저장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이는 1953년 뇌전증을 앓았던 H.M으로 더 잘 알려진 헨리 모라이슨(Henry Molaison)이 해마를 비롯해 편도체, 내후각피질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헨리는 수술을 받은 후 어린 시절과 수술받기 전의 기억은 제대로 가지고 있었으나 수술받은 이후부터는 새로운 기억을 전혀 생성하지 못하고 영원히 현재만을 살았다.


헨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어제가 없이 영원히 현재만을 살았는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즐기라고 그렇게 수많은 성현들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헨리처럼 해마를 제거하고 살면 항상 현재를 살 수 있는데 행복해질까? 해마를 제거하면 퇴행성 치매도 원천 차단할 수 있을 텐데 행복해질까?


헨리는 수술 이후 삶을 가장 행복하게 살았을까? 수술한 헨리가 2008년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50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연구를 했던 임상 신경학자인 브렌다 밀러(Brenda Milner)를 매일 보면서도 단 한 번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인사를 했다.


'산다'는 것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산다'는 것의 실체는 '기억'이 모든 것이다. 기억으로 인하여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기억이 있기에 세상이 나에게 의미가 있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기억이 있기에 그대가 있고 나의 존재가 있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밖으로는 나를 어떻게 기억시킬 것이며 안으로 나는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지를 화두처럼 들고 있어야 한다. 헨리처럼 어제가 없이 현재를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지금 현재, 바로 여기'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했을 때만 유효하다.


현재를 즐기는 내가 있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내가 체험하여 일화기억으로 각인하고 있어야 한다. 친구들과의 수다와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때로는 화가 나서 흥분된 옆집 아저씨의 목소리까지도 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기억의 재료들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어느 것 하나 흘려듣고 보고 할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만큼 다 소중한 내 삶의 일부가 된다. 그 기억의 소중함을 알고 난 이후에야 '지금 이 순간'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다가온다.


그대에 대한 기억을 새록새록 끄집어내 본다. 혹시나 기억 속에 가물가물 잊힐 듯 한 시간들이 있었다면 다시 끄집어내어 주섬주섬 연결해 본다. 미소 짓게 되고 웃음 짓게 된다. 그렇게 기억을 재생하는 일, 산다는 행위의 시작이다. 그대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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